일본 며느리의 한국 설 명절 에피소드
"불편한 점 많지만, 정이 넘치는 한국의 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10년 전 시집온 후 첫 설을 떠올리는 이시하라 유키코(40·서울 강서구) 씨. 어느덧 한국에 시집온 지 10년이 된 일본인 며느리이자, 초등학교 1학년과 두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현재 이촌글로벌빌리지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계 가정이 많이 살고 있는 이촌 지역에서 일본계 가정의 한국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인 며느리 이시하라 씨가 10년 동안 경험한 ‘한국 명절’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어마어마한 장보기와 상차림에 '헉!'
한국의 설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차례’다. 이시하라 씨는 결혼하기 전에도 남편으로부터 시댁 ‘차례’와 ‘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몸소 느껴보지 않아서였던지 ‘그런 게 있구나, 한국은 그렇게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현실에선 ‘헉!’ 소리가 났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얼마 전부터 시댁은 1년에 1번, 명절 2번 지내던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지만, 결혼하고 몇 년간은 제사 준비를 했었다. 1년에 총 15차례씩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많이 사는 걸까?’ 이시하라 씨는 장보기에도 한 번 더 놀랐다. 하지만 장을 많이 보는 이유를 곧 알게 됐다. 일본에서처럼 한두 끼 먹을 음식을 하는 게 아니라, 제사상에 올릴 음식과 가족들과 먹을 음식, 또 남겨 싸갈 음식까지 준비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설을 처음 접하는 이시하라 씨의 눈에는 그런 문화가 그저 신기했다.
일본 친구들에게 한국의 설을 이야기 해준 적이 있다. ‘제사 음식을 이렇게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친구들은 상상을 못하는 눈치였다고.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그럴 수 있다. 이시하라 씨, 자신도 그랬으니까.
◇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한다고요?
일본에서도 설 명절이 되면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조카나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문화가 있다. 가벼운 안부 인사와 함께 아이들에 돈을 준다. 하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진 않는다.
‘왜 아이들에게 돈을 받지?’라는 거부감을 갖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용돈을 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고, 받는 부모님도 큰 부담이나 거부감을 갖지 않는 문화가 이시하라 씨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10년차 한국 며느리는 이번 설에도 봉투를 챙겼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둑이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까지 담았다.

◇ 7~8시간 걸리는 귀성길을 매번?
시댁이 부산이다. 이번 설에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 버스, 자가용, 기차, 비행기... 지난 10년간 이용해보지 않은 교통편이 없다. 처음에 내려갈 때 버스로 5시간 걸려 내려갔다. 그 시간이 걸렸는데도, 금방 도착한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놀라고, 그 시간이 걸리는 데도 당연하게 각자의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에 놀랐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일본과는 다른 문화 탓에 놀란 것이다. 일본이었다면, ‘무리해서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장시간의 귀성길에도 명절에는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의식이 바탕이 된 문화인 듯 보였다. 주변 가정들을 살펴봐도 몇 시간에 걸쳐 고향 길을 내려갈 만큼 한국은 명절을 중요시 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끼리 마주하고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꽉 막힌 귀성길, 귀경길은 생각만 해도 힘겨운 추억이었다.
이번 설은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보는 이시하라 씨다.
◇ 방에 모두 들어가서 잠을?
'설 명절 에피소드, 많은 것 중 뇌리에 가장 강하게 박혔던 사건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이시하라 씨는 번쩍 떠오른 듯 주저 없이 말했다.
“친척들이 모여서 다 같이 자잖아요. 잠자리가 따로 마련 된 것도 아닌데, 어디든지 누울 수 있는 데 다 눕고 하니까 잘 씻지도 못하고 불편했어요.”
일본에서는 가족들이 모이더라도 밥 먹고 몇 시간 후면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한국은 하루 전, 혹은 며칠 전부터 모여 함께 음식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몇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한 가정이 살던 집에 대가족이 모이면 어쩔 수 없다. 저녁이 되면 아무 방이나 자리가 있으면 들어가 자야했다.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자는 모습이….
‘그땐 그랬지….’ 처음 시집와 적응할 때까지 놀랐던 것들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10년차 며느리 이시하라 씨. 연휴가 길어도 시댁에 가야해 친정인 일본에는 가지 못하지만 많은 가족이 모여 지내는 한국의 설도 익숙하다.
“일본에서는 명절은 있지만 가족끼리 모여 뭔가를 같이 한다던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정을 쌓는다는 게 특히 아이들에게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며느리들은 조금 힘들더라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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