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 DJ가 된 4명의 결혼이주여성들
라디오 방송 DJ가 된 4명의 결혼이주여성들
  • 윤지아 기자
  • 승인 2016.04.28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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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국 엄마들과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

【베이비뉴스 윤지아 기자】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방송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라디오 부스 속 6명의 여성들이 미소를 띄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여성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녀들이 모인 이 공간에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까.


지난 22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성남아트센터 내 소리스튜디오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가 진행됐다. DJ로 선정된 결혼이주여성들이 성남시를 비롯한 전국 다문화가정에 도움 될 만한 정보를 전하기도 하고,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진 고충과 고민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유리벽을 통해 시민들에게도 공개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공동 라디오 DJ가 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여성들은 성남시에 거주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이다. 격주로 업데이트 되고 있는 그녀들의 라디오 방송은 성남시가 결혼이주여성들의 일자리창출과 문화의 다양성을 나누기 위해 기획한 공동 DJ 프로그램이다. 엄마 혹은 아내, 아줌마로 불리던 그녀들은 어느새 전국에 퍼지는 라디오 DJ가 돼 전국 다문화 가정을 만나고 있었다.


전문 MC와 결혼이주여성이 모여 성남시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윤지아 기자 ⓒ베이비뉴스
전문 MC와 결혼이주여성이 모여 성남시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윤지아 기자 ⓒ베이비뉴스

 

◇ "우리도 평범한 한국 아줌마였죠"


격주로 방송분 녹음을 하는 라디오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는 6명의 여성들이 모여 라디오를 진행한다. 이중 결혼이주여성 DJ는 4명이다. 2명은 한국인으로 전문 MC인 김미라, 김소영 씨다. 전문 MC들은 방송을 시작한 결혼이주여성들의 서툰 진행을 돕고 방송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DJ에 도전장을 내민 여성들은 일본 출신 아사이 미도리(38) 씨, 중국 출신 상미하(33) 씨, 베트남 출신 이재희(33) 씨, 캄보디아 출신 히안 셍호르(29) 씨로 총 4명이다.


한국에 와 결혼 한지 6년차부터 10년차까지 한국말도 문화도 제법 정복한 그녀들이지만, 방송을 시작하기 전엔 그저 평범한 아이 엄마이자 주부였다.


성남시에 살면서 나라별 결혼이주여성 커뮤니티 모임에 가입하고, 학부형모임에 참석하며 지내던 그녀들은 성남시에서 라디오 DJ를 모집하면서 평이하던 일상이 달라졌다. 커뮤니티 내에서 ‘DJ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받기도 하고 관심 반 호기심 반으로 지원을 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한 주부였던 4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은 DJ로서 라디오 부스에 모였다.

 

◇ "우리는 실수투성이 네 명의 아줌마"


6~10년간 한국 생활을 한 만큼 모국어보다 한국어가 익숙해 진 그녀들이다. 농담까지 한국어로 술술 나오는 그녀들이지만, 버벅이던 첫 방송 녹음하던 날은 잊을 수 없다.


"첫 방송 녹음 때 너무 긴장을 많이 했어요. 서로 어색하기도 하고 라디오 부스, 헤드폰, 마이크 하나하나가 전부 어색했어요. 방송용으로 말하려고 하고, 잘 하려고 하다 보니 나오던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캄보디아 출신 히안 셍호르씨가 지난달 녹음 때의 기억을 꺼냈다. 그러자 모두 입을 모아 그날을 떠올렸다.


"실수를 너무 많이 해 절대 잊을 수가 없다"는 그녀들의 ‘함께 나눠요 행복한 수다’ 첫 방송은 한국어로 방송되지만, 한국어가 서툰 결혼이주여성들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DJ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번역해 정보를 전달하는 코너도 진행됐다. 하지만 첫 녹음 날은 모국어도 틀리고, 한국어도 틀리는 웃지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NG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실수투성이였던 첫 녹음을 마치고, 방송되던 날. 그 영광의 첫 방송은 각자의 자리에서 친구, 남편, 아이들과 함께 들었다.


일본 출신 아시이 미도리 씨는 첫 방송을 한국인 친구와 함께 들었다. 친구는 "한국 사람이 들어도 재미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해줬다. 하지만 정작 남편에겐 부끄러워 아직까지도 들려주지 못했다.


DJ들의 남편들은 응원을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여나 ‘말실수를 하진 않았을지’, ‘문법을 틀리진 않았을지’에 대한 걱정 또한 이어진다고.


캄보디아 출신 히안 셍호르 씨의 남편은 ‘이 부분이 틀렸다, 많이 더듬었다’ 등 틀린 부분을 지적 하면서도 칭찬과 격려로 힘을 실어줬다.


중국 출신 상미하 씨의 남편도 재미있게 듣더니 정작 “한국어가 서툰 4명의 여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니 살짝 정신없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베트남 출신 이재희 씨는 SNS를 통해 가족들에게 방송을 들려줬다. 이 씨는 “방송이 한국어로 진행되다 보니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며 “그렇지만 고국 가족들은 목소리라도 자주 듣고 싶어 꼬박꼬박 챙겨듣는다. 베트남에도 퍼지는 방송이 됐다”고 미소를 보였다.


특히 엄마의 라디오 방송을 들은 아이들 반응은 어땠을까? 순수 그 자체였다. 아이들 이야기에 라디오 부스 안은 금세 웃음이 가득해졌다.


중국 출신 상미하 씨의 9살 아들은 “엄마 여기 어디에요? 엄마 왜 핸드폰 안에 들어가 있어요?”라고 물으며 신기해하면서도,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라디오 나온다”고 자랑하기 바쁘다. 일본 출신 아사이 씨의 10살 딸도, 자신의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신기해하고 관심 있게 들었다.


격주로 진행되는 녹음이라고 해도 아이 엄마로서, 아내로서 지내던 그녀들의 일상에는 작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금요일 녹음을 위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거나, 대본작업을 위해 전날까지 주제를 생각하고, 이번 방송에서는 어떤 말을 해볼까 등을 고민하기도 한다. 때론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녀들이다.


“목요일 자정까지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편”이라는 상미하 씨는 “누가 옆에서 말하면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아이를 재우고 모두 잠든 시간에 고민하는 것이 습관 돼 버렸다”고 고충 아닌 고충을 털어놨다.


이재희 씨도 “아기를 재워야 집중이 되기 때문에 대본 번역은 밤늦게까지 계속 된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지 국수를 끓이면서 생각하던 날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모두, DJ가 엄마기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다.

 

◇ "아줌마 표 '미녀들의 수다'되길 꿈꿔요"


“비정상 회담, 미녀들의 수다 등 외국인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어요. 언젠간 저희도 그런 자리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들에게 돌아온 답이다. 그만큼 그녀들은 방송을 즐기고 있고 욕심도 있다.

 

“우선 라디오는 무엇보다 말로 전달하는 매체기 때문에, 스피치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그녀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싶어 방송하는 말투를 연습하기도 하고 한국 라디오 방송도 많이 듣고 있다. 외국인들이 중심 패널인 TV프로그램도 유심히 보는 편이라고 한다.


4명의 DJ들은 떨리던 첫 녹음은 생각도 안날 정도로 방송이 많이 익숙해졌다. 서로도 많이 가까워져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편해졌다. 인터뷰 도중에도 무의식중에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댈 정도로 말이다.


지자체 라디오방송을 시작으로 한 그녀들의 목표는 뭘까. 그녀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방송을 하는 것이라 입을 모았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생각 없이 즐기던 프로그램들에도 욕심이 생겼다. 라디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기를 끌었던 ‘미녀들의 수다’나 ‘비정상회담’같은 프로그램의 아줌마버전이 생겨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생기길 바란다.”


물론 아직 전문 방송인의 길로 가는 길은 멀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만큼 그녀들의 포부는 당차다. 일반 방송이 아닌 결혼이주여성들이 만들어 가는 방송, 4개 국어와 한국어가 어우러진다는 특색들을 내세워 발돋움 하고 있는 그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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