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 유치원부터 사교육 부채질"
교육부, 초등교과서 한자 표기 확대…초등용 한자 370자 선정 한글문화연대 "학습에 도움 안 돼…사교육비만 250만 원 유발"
【베이비뉴스 안은선 기자】

지난해 말 교육부가 2019년부터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한자 표기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글문화연대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학습 용어 이해에 한자 표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집필진의 무분별한 병기를 부채질하고, 유치원부터 한자 사교육을 필수로 만들 부작용의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 "학습 용어 이해에 한자 표기는 아무런 도움 안 돼"
먼저, 한글문화연대는 이번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한자 표기가 한자어 이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과학적 근거 없이 밀어붙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한자란 대개 우리 고유어를 압축 번역한 음을 지니고 있다. 그런 한자가 2음절이 넘어가면 그 뒤에 압축 번역된 뜻을 알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한자의 훈을 적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면 한자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풀이해줄 수 있는 한자어는 전체의 30% 남짓인데, 그런 때에도 한자 풀이란 한자의 훈을 이용하는 것이지 한자의 글자 모양을 가르쳐줘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것이 이미 인지과학계의 실험 결과로도 나왔지만, 이를 반박할 어떠한 연구도 교육부에서는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 "초등용 한자 300자 선정, 객관성 없어"
한글문화연대는 두 번째로, 교육부 연구 용역을 수행한 서울대 김동일 연구진에서 지난해 11월 30일 밝힌 370자의 한자와 한자어는 '학습 용어 이해를 위해 한자를 표기한다'는 교육부의 명분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370개의 한자를 골라 한자어를 표기하려다 보니 매우 중요한 학습 어휘임에도 해당 한자만으로는 표기할 수 없는 용어들이 빠지고, 굳이 깊이 알 필요가 없는 한자어가 370자 한자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어가는 등 짜 맞추기 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 한자어 이해에 한자를 표기하려는 게 아니라 한자 가르치기 위해 우리 국어 낱말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글문화연대 측의 설명이다.
한자 선정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질적 선정 방법을 통해 뽑은 한자는 270개였는데, 양적 선정 결과로 나온 370개 한자에서는 질적 선정에서 중복을 제거한 226개 한자 외에 144개 한자가 명확한 근거 없이 추가됐다.
한글문화연대는 "부속도서의 '섬 서', 서식지의 '살 서', 맥락의 '이을 락', 조동의 '거칠 조' 등은 모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저빈도 한자라 선정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더구나 이런 혼란 때문에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30일에 한자 선정을 마치지 못했는데도, 교육부는 마치 300자를 뽑은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될 한자에 관한 검증 계획도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 "무분별한 병기 예방은 적반하장격의 억지"
앞서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학습자 수준에 맞지 않거나 학습 내용과 관련이 없는 무분별한 병기를 예방해야 한다는 교육적 관점에서 한자 300자를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글문화연대는 앞뒤가 뒤바뀐 억지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교과서 집필 상의 유의점에 따라 집필한 초등교과서에서 교육부가 '무분별한 병기'라고 지적한 내용은 전체 병기 사례 26건 가운데 16건이었고, 그 한자 수는 22자에 불과함에도, 교육부에서는 300자를 정해 병기를 허용하고는 무분별한 병기를 막는 예방 차원이라고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 16건의 무분별한 한자병기 역시 교과서 집필진과 심의회 판단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다른 조건의 변화가 없는 한 300자 표기 허용은 '무분별한 병기'를 늘릴 뿐이라는 게 한글문화연대 측 입장이다.
◇ "유치원부터 한자 교육 부채질…사교육비 250만 원 필요"
교육부에서는 기본 한자 300자와 친숙해지는 창의적 체험활동 자료를 개발 보급해 초등 수준에 적합한 한자 교육이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글문화연대는 "이 덕에 한자 선행 교육이 필요 없게 되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유치원부터 한자 선행 사교육을 필수로 강제하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며 "교과서에 한자가 표기되고 그 교육자료가 나오는 순간 학부모들은 자녀가 한자를 알아야만 학습 용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불안을 떠안게 된다. 이는 초등 저학년뿐만 아니라 유치원부터 한자 교육을 부채질해 유치원부터 사교육 차원에서 한자교육을 필수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글문화연대에 따르면, 교육부가 선정할 초등용 표기 한자 300자를 알기 위해서는 한자급수시험 주관기관인 한국어문회가 규정한 4급 정도의 실력이 필요하다. 초등학생이 한자 급수 4급을 따려면 학원에 다니면서 대강 1년 6개월 이상은 공부해야 한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한문 한자 학원은 한 달 수강료가 대략 12만 원이므로, 4급 시험을 볼 만큼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학원비만 216만 원이 필요하다. 한 번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응시료 2회 4만 원, 여기에 석 달치 학원 수강료 36만 원이 추가로 든다고 치면, 이래저래 250만 원의 사교육비가 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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