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네 아이는 20대 국회 안에 잠들어 있다
아직도 네 아이는 20대 국회 안에 잠들어 있다
  • 이중삼 기자
  • 승인 2019.12.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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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아이들 영정 품은 부모들과 함께 보낸 '기다림'의 시간

【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어린이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무릎까지 꿇은 유가족들.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어린이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무릎까지 꿇은 유가족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여론이 무섭기는 한가보다. 평소 관심조차 없던 아이들 법안에 국회의원들이 다급하게 뛰어든 걸 보면.

유가족들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에게 매일같이 법 좀 만들어달라고 편지를 보냈을 때는 무시하더니, '대통령과의 대화' 이후 거세진 여론에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서둘러 챙기는 걸 보면 말이다. 지난 10일 민식이와 하준이가 먼저 국회에서 "건져"졌다. 하지만 여전히 해인이, 한음이, 태호, 유찬이 네 아이는 국회에 잠들어 있는 상황.

유가족들은 매일 국회로 출근했다. 제발 아이들 이름으로 된 법을 만들어달라고. 초대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복도에 서서 ‘의원님’들을 기다렸다. 기자는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0일까지 3주가 넘는 날 동안 매일 이들의 '기다림'을 곁에서 지켜봤다. 부모들은 때로는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때로는 작은 펼침막이나 법안 내용이 담긴 문건 봉투를 들고 매일같이 '의원님'들을 기다렸다.

유가족들은 국회의원을 마주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제발 아이들을 "건져만 달라"고 말이다. 심지어 유가족들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절실하게 국회의원에게 빌었다. "아이들 건져만 주세요." "제발 법안 논의라도 될 수 있게 해주세요." 기자는 매일 유가족들과 국회를 동행하면서 의원들의 표정을 봤다. 몇몇 의원들에게는 이들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해인이법’, ‘한음이법’, ‘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민식이법’을 일컫는다. 모두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법안들이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쟁점 법안도 아니다. 법이 갖춰지지 않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아이의 이름에 ‘법’이라는 엄중한 글자를 붙여 다시는 내 자식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민생법안이다.

유가족들은 안다. 이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 잊는다. 내 아이 이름으로 된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이들 부모가 얻을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런데도 이들이 이토록 간절히 법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먼저 간 내 아이의 이름으로 지금 살아 있는 다른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멈추지 않는 카메라 셔터 소리… 기자라는 게 부끄러웠다

지난 3주 동안 목격한 것 중에 잊을 수 없는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은 지난달 21일 ‘민식이법’이 단 10분 만에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를 통과했을 때, 태호 아빠 김장회 씨가 한 말이었다. 태호는 지난 5월 15일 송도축구클럽 통학차량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다. 이날 김장회 씨는 “논의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합의가 이뤄져서 허탈하다”면서, “이렇게 쉬운 거였냐”고 한탄했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 중 발의된 지 가장 오래된 '해인이법'은 3년 9개월째, 가장 짧은 '민식이법'도 두 달째 국회에서 논의 한번 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낸 유가족들을 그때는 모르는 척하더니,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부랴부랴 움직이는 국회의 모습에 실망감이 컸다. 그것도 10분 만에 ‘민식이법’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에는 황당함마저 느껴졌다.

왼쪽부터 해인이 엄마 고은미 씨, 태호 엄마 이소현 씨,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왼쪽부터 해인이 엄마 고은미 씨, 태호 엄마 이소현 씨,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두 번째 장면은 지난달 29일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선언한 때다. 이날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회 본회의에 오른 199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고 밝히며, 이날 열리기로 예정된 본회의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특히 어린이생명안전법안에 이름을 빌려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선거법(개정안)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 통과시켜주자”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유가족들은 나 전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 의자에 앉은 민식이 엄마 박초희 씨는 남편인 김태양 씨에게 안겨 오열했다.

쟁점법안도 아닌, 아이들 이름으로 된 법안에 선거법이라는 조건을 붙인 자유한국당의 선택이 의아스러웠다. 바로 하루 전날 국회에서 유가족들을 만난 나 전 원내대표는 '자신도 엄마'라고 했다. 그리고 '너무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박 씨는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하염없이 눈물만 쏟았다. 민식이 아빠 김태양 씨는 기자들에게 아내의 모습을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의 셔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열하는 민식이 엄마에게 핀마이크를 들이밀면서 한마디라도 들어보겠다는 기자들까지. 공감능력 없는 국회만 비난할 것이 아니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졌다.

결국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의 '마지막' 날,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인이법’, ‘한음이법’, ‘태호·유찬이법’은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남은 법안들의 처리는 임시국회 개최에 기대를 걸어야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임시국회가 언제 몇 번이나 열릴지는 아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대 국회 임기 안에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은 모두 폐기된다.

국회에 묻고 싶다. 정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지. 분명히 기억하길 바란다. ‘해인이법’, ‘한음이법’, ‘태호·유찬이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남은 기간 국회의원으로서 정말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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