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크는 아이, 마을을 키우는 아이
마을에서 크는 아이, 마을을 키우는 아이
  • 기고 = 이화진
  • 승인 2012.10.02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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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위험사회, 마을 복원이 중요한 시점

주민 품으로 돌아온 공원 인천 연수구 청학동 이야기공원(옛 터널공원)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물 마시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이 공원에서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를 펼치면서 공원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주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원이 됐다. 시소와그네 인천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는 이곳에서 격월로 별난놀이터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은 지역 아이들이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시소와그네 인천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
주민 품으로 돌아온 공원 인천 연수구 청학동 이야기공원(옛 터널공원)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물 마시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이 공원에서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를 펼치면서 공원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주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원이 됐다. 시소와그네 인천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는 이곳에서 격월로 별난놀이터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은 지역 아이들이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시소와그네 인천연수구영유아통합지원센터

 

◇ 개천에서 용 난다?

 

시소와그네 마포영유아통합지원센터 이화진 센터장.
시소와그네 마포영유아통합지원센터 이화진 센터장.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계층이동이 가능한 사회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해 ‘개천에서 태어난 용’을 보고 열광하며, 나도 그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한 켠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한편 이 말은 근대화의 미화된 신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흔히 20대 80 사회를 얘기합니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80의 사람 중에서 개천에서 태어난 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극소수의 성공사례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표상으로 쫓는 것이 건강한 사회일까요? 푸코는 소수를 죽여 다수를 살리는 사회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수를 죽여 소수가 사는 사회입니다.

 

◇ 위험사회의 징후

 

우리는 ‘위험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대가 이뤘던 균형이 모두 무너지고,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위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근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니 그보다는 먼저 우리가 지나온 근대가 어떤 시대였을까요? 근대는 평생고용이 보장되던 사회였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도 하나의 사회였습니다. 연공서열과 졸업장에 의해 혜택을 받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 되었습니다. 핵가족이 늘고, 급속한 국민교육의 확장으로 공장 형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노동과 교육의 동기는 기회 균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과 같이 사람들은 모두 경제 발전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부의 총량 확대’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이 근대의 삶입니다. 직장 상사와 불화를 겪고, 군기를 잡는 학교 선배와 충돌을 벌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때 까지는 사회가 있었습니다. 위험 사회는 근대와 함께 후기 근대를 이야기 하면서 나온 개념입니다. 인류는 농경 사회에서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근대란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대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순한 반성에 그칠 게 아니라 가던 길을 멈추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 할 시점에 온 것입니다. 위험 사회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성찰입니다.”


◇ 투자를 회수하려는 부모들

 

위험사회의 징후는 관계단절입니다. 인간 사회의 가장 근본적 혈연관계인 부모 - 자식 관계조차 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장은 모든 인간관계를 단기적인 관계로 잘라버렸습니다. 원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호 호혜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합니다. 자식을 유학 보내며 투자라 생각하고 회수할 꿈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좌나 우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노력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아이를 진보적인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문제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교육문제는 입시문제로 대체되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능력 좋은 사냥꾼 일수록 겸손하고, 포획물을 모두 부족장에게 넘겨 공평히 배분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인류는 공동체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지혜를 지녔고, 재분배와 상호 호혜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이뤘던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위험 사회에서는 이러한 균형이 깨지고 단기적인 관계 속에서 굉장한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돈은 많아도 쓸 시간이 없는 사람, 아니면 정말 가난한 사람, 딱 두 종류의 사람만 남게 되죠. 흔히들 20 대 80, 10 대 90의 사회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요즈음 용이 나는 곳은 개천이 아니라 대치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 개천이던, 대치동이던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공통점이 아닐까요?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의 표정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IMF 사태 이후에도 사람들이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경쟁이 심화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2002년이 지나자 아이들에게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표정이 달라지더군요. OECD 자료(2009년)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률 1위, 최저출산 1위를 한국이 했습니다. 또한 최근 신문기사를 보니 연령별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였습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70% 이상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고 합니다. 부모 - 자식관계의 변화는 가정과 공동체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CCTV 설치와 아동 성폭력 증가 역시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폭력의 결과입니다.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귀가 지도를 위해 50, 60 대 남성 노인들을 선발하자 학부모들이 반발해 모두 할머니로 교체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노인조차 못 믿습니다.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입니다. 아이도 안 낳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양극화가 발생합니다. 무기력한 다수를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겁니다. ‘우리가 먹여 살릴 테니 너희는 놀아라’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양극화입니다. 체재에서 배재된 다수가 되는 것입니다. 푸코가 얘기했던 사회가 소수를 죽여 다수를 살게 했다면, 지금의 사회는 소수를 살리고 다수를 죽이는 사회입니다.”


◇ ‘선생님 저 며칠 남았어요?’


균형을 잃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무력감을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복지관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들었던 섬뜩한 문구입니다.


‘나의 꿈은 커서 수급권자가 되는 거예요.’


‘학교는 감옥같아요 들러리 서기 싫어요.’


아이들이 돌게 되는 ‘입시성공트랙’에서 경쟁을 잘하는 ‘품종’은 20%에 불과합니다.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주변적 참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널브러져 있고, 인터넷과 핸드폰 중독에 빠집니다. 최대로 허용된 결석일수가 68일인데, 교사에게‘저 며칠 남았어요?’라고 물어가며 학교를 빠진다 합니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완전히 도태되어 대안학교를 찾거나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도 생깁니다. 왕따, 가정 폭력 등으로 인해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 학습 속도가 굉장히 빠르거나 느린 이들입니다.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삐끼로 나서거나 성매매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이러한 문제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들의 탈학교, 탈 체제화는 전 지구적 추세입니다. 한국에서는 94년부터 탈학교 생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2002년부터는 탈 체제화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히키코모리(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가 되고, 인터넷 폐인, 휴대폰 중독자, 니트 족, 캥거루족이 됩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 사회보다 10 ~ 20 년 앞서 이 같은 사회 현상을 겪었습니다. 히키코모리 첫 세대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이들이 이제 40대가 되었습니다. 24시간 편의점이 이들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 3시쯤이 되면 슬며시 집을 나서서 라면 하나를 사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방 한 칸이 스스로의 감옥인 셈입니다. 지켜보는 부모도 미치려 하고, 계속 그렇게 사는 데까지 사는 겁니다.


◇ 마을에서 크는 아이, 마을을 키우는 아이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까요? 근대가 붕괴된 이후 우리 사회가 걸을 수 있는 길은 두 갈래입니다. 소수가 무기력한 다수를 지배하는 20 대 80의 사회가 하나라면, 공생사회가 또 다른 하나입니다. 상호 돌봄과 학습 능력을 회복해 ‘마을’을 복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호 호혜의 관계, 믿는 관계로 다시금 돌아가는 것입니다. 당뇨병, 암과 같은 현대병의 예방과 치료가 소박한 밥상, 건강한 일상의 회복과 같은 삶의 복원을 통해, 즉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고립된 아이와 쫓기는 부모, 약화된 가족기능을 회복하는 방법은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과 먹고 입고 자라는 과정을 인류사가 오랜 세월 유지하여 왔던 공동체의 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마을을 있게 합니다. 아이 때문에 부모가 만나고, 아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마을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기능도 강화됩니다. 마을 속에서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세대가 교류하면서 사는 재미가 있는 마을이 이뤄집니다. 결국 아이들이 마을을 키우고, 마을이 커가는 과정 속에서 가족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성미산과 삼각산 재미난 학교의 공동육아 사례와 같이 적극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아이들끼리, 부모와 부모끼리, 동네 주민들끼리 더 관계 맺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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