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쓰이는 많은 것들이 일회용품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일회용품’을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나무젓가락, 종이컵, 주사기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결혼식 날 입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도 한 번 입고 돌려줘야 하고, 최고급 종이에 화려하게 인쇄된 청첩장 역시 일회용이다. 신부 손에 들려있는 웨딩부케도, 결혼식장을 장식한 아름다운 꽃도 하루가 지나면 시들어버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일회용 장식이다.
환경을 생각해 나무젓가락, 종이컵을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은 널리 퍼져 있지만 단 한 하루뿐인 결혼식을 위한 소비재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에코웨딩(Eco Wedding)’은 ‘친환경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eco’와 ‘결혼’을 뜻하는 영단어 ‘wedding’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로 결혼식에 필요한 일회용품을 줄여 지구 환경을 지켜내자는데서 시작됐다.
지난 9월 15일 오후 서울 효자동 청와대사랑채에서는 지구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한 커플의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신랑 강한마로 씨와 신부 유정은 씨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두 사람의 특별한 결혼식으로 친환경 결혼식(이하 에코웨딩)의 의미와 매력을 살펴봤다.
◇ Eco Wedding, 나만의 특별한 웨딩드레스
이날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한지에서 뽑아낸 실로 제작한 원단으로 만들었다. 이 웨딩드레스를 만든 사람은 국내에서 에코웨딩을 선도하고 있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 대표다. 이 대표는 2005년 대학원 연구 작품으로 옥수수 전분에서 뽑아낸 섬유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에코웨딩’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우연히 한 연예인의 웨딩드레스가 몇천만 원에 이른다는 뉴스를 듣고, 결혼식에 입는 특별한 옷인데도 너무 의미 없고, 하루 입는 것치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섬유로 만든 웨딩드레스는 만들 때부터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처분할 때도 썩지도 않아 태워야 하는데 그럼 또 유해한 화학성분이 방출돼 환경을 오염시키는 꼴이 된다. ‘웨딩드레스를 바꿔보자’라는 생각으로 처음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부 유 씨는 “평소 입고 싶었던 웨딩드레스에 대해 디자이너와 계속 상담했고, 내가 생각한 나만의 웨딩드레스가 완성됐다. 웨딩드레스를 구매하면 입을 일도 없고 옷장에서 애물단지가 된다는데 이 드레스는 결혼식 후 리폼해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신부 대기실에서 만난 한 하객도 “한지로 만든 웨딩드레스라서 어떨까 궁금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웨딩드레스와 다를 게 없이 예쁘다. 살짝 만져봤는데도 그냥 옷감 원단 느낌이라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Eco Wedding, 뿌리가 살아있는 웨딩부케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회용품은 꽃이다. 에코웨딩은 살아있는 꽃을 꺾어 생명을 앗아가기보다 꽃의 생명을 그대로 유지해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했다. 결혼식장을 장식한 모든 꽃은 절화가 아닌 뿌리가 살아있는 형태로 화분에 담겨 결혼식장을 아름답게 빛냈다.
신부의 웨딩부케는 뿌리가 다소 말라도 살아 있는 난과 다육식물로 제작했다. 신랑의 부토니아 역시 신부의 부케와 같은 난과 다육식물로 제작했다. 양가부모, 사회자, 주례자의 코사지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식이 끝나면 화분에 옮겨 심어 생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것.
버진로드는 9월 정취에 맞게 노란색 소국을 중심으로 꽃과 허브 화분으로 장식했다. 그윽한 국화 향과 함께 싱그러운 식장을 연출했다는 평이다. 주례단상은 하얀색 안스리움 화분으로 장식해 고급스러움을 더 했다.
쓰인 모든 화분은 결혼식이 끝난 후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나눠준다. 하객들로 하여금 이 화분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기념하고, 지구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에코웨딩의 정신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결혼식 후 꽃과 허브 화분을 받아든 하객들 역시 신선한 아이디어와 깜짝 선물에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신부 측 하객 정보윤 씨는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결혼식이라 더 특별하고 좋다. 화분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든다. 두 사람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만큼 꽃을 잘 키우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작은 것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에코웨딩
에코웨딩이라고 반드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작은 실천만으로도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에코웨딩을 실천할 수 있다. 유기농 화장품을 이용해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나 결혼 피로연 음식을 유기농 음식으로 대체하는 것도 에코웨딩이 일환이다.
특히 청첩장은 에코웨딩을 실천하기 가장 쉬운 품목이다. 2010년 한 환경단체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평균 840쌍이 결혼을 한다. 이들이 한 쌍 당 400장의 청첩장을 만든다고 가정하고, A4 용지 1만 장을 원목 한 그루로 환산하면 결혼 청첩장을 만들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만 1년 동안 1억 3,812그루다. 청첩장 용지만 아껴도 1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비목재 종이나 재생종이 위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한 친환경 청첩장을 제작하거나, 액자형 청첩장을 제작해 청첩장을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에코웨딩을 실천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날의 주인공 신부 유정은 씨는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던 터에 에코웨딩을 알게 됐다. 지구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콘셉트나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 신랑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더 생겼다. 하객들이 오늘 우리 결혼식을 보고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우리 결혼식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