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쓴다고 했더니 모두가 만류"
출산휴가,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쓰는 우리네 직장인들
웨딩뉴스팀 김고은 기자ke.kim@ibabynews.com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리모컨으로 TV를 끄며 묻는다. "회사에 육아휴직 얘기해봤어?" "아니, 아직…." 남편의 힘없는 대답이 이어진다. 곧 전화기가 울린다. "네, 어머니 저예요. 아…, 둘째는 힘드시겠다고요."
네 살배기 첫아이가 아직 말을 다 못 뗀 이유가 일이 바빠 육아에 전념하지 못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주부 A 씨. 둘째 아이까지 임신한데다 아이의 정서 교육상 엄마의 육아가 최선이라는 생각에 끝내 사표를 낸다. 하지만 윗선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아니 자네 이렇게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나서면 우리는 언제 다시 사람 뽑아서 일하나? 내년 프로젝트 준비 얼마나 오래 한 건지 알면서 이래?"
남편 B 씨의 걱정도 만만치 않다. 육아휴직에 대해 말 꺼내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고, 휴직 후 복귀했을 때의 업무 적응, 연봉 정체 등의 문제도 걱정이다. 고민 끝에 힘들게 운을 뗐더니 동료는 물론 윗선에서도 육아 도우미를 쓰면 썼지 남편이 육아휴직 쓰는 건 경우가 아니라며 만류한다.
지난 17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룸센터에서 서울시 주최로 일?가정 균형 서울 CEO포럼 인사실무자 워크숍이 열렸다. 50여 명의 기업 CEO와 인사 담당자 등이 모여 사회심리극을 감상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모색하는 토론을 벌였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맞벌이하는 신혼부부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과 회사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그려낸 사회심리극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참석자들에게 씁쓸한 표정을 짓게 했다.
심리극은 A 씨가 퇴직을 하고 B씨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회사에 폭탄 발언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까지 수년간 일하며 쌓아온 경력이 아깝지만 아이를 위해서 엄마는 직장을 포기하고, 아빠는 주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한 기업 관계자는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맞벌이하는 중에 임신했는데 임신 기간 중에도 출산 후에도 회사 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마음 같아선 당연히 내가 기르고 싶은데 일은 해야겠고 아이 봐 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육아휴직을 하면 눈치를 봐야 하는 것 말고도 회사에서 불리한 점이 많다. 친구들도 모두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직장생활 문제에 대한 심리극도 펼쳐졌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퇴근하지 않는 부장님, 퇴근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위에서 업무가 내려와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직원들, 직원들의 야근하는 모습을 보며 일 열심히 했으니 스트레스 풀어야 한다며 주말에 북한산으로 모이라는 상무님,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참석을 강요하는 과장님.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에 치여 가정을 돌볼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직장문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들이었다.
이날 워크숍을 기획한 한국일가정양립재단 안세연 연구원은 "애사심을 명목으로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와 야근, 윗선에 싫은 소리 하면 미운털 박히는 조직 문화 등이 가정에 충실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결국 가정불화, 출산 기피, 결혼 포기 등의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제도와 내부 시설 등을 마련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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