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유령생활기록부」 주인공 허영풍은 원하는 학교에도 못 갔고, 원하는 일도 못 했다. 남들처럼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스포츠 복권에만 빠져 살고, 날리기 일쑤다. 사회에서 도태된 존재라고나 할까.
애매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죽음조차 애매하다. 엉겁결에 연쇄살인마에게 죽임당하고 졸지에 유령이 됐다. 일단 어쩌다 죽긴 죽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친구를 찾았나 싶었는데 순간 사라져버렸다.
뭔가를 만질 수도,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수도, 컴퓨터를 켤 수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유령으로서의 삶은 처음이라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본문 24p
허영풍은 죽기 전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헤어진 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난 여자친구에게 가 어떤 사건을 해결해주고, 오래된 대학친구를 찾아가 보곤 대학 시절과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하기도 한다. 명절에는 고향에 홀로 계신 엄마를 만난다. 영풍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자기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고 이 세상을 가볍게 떠나고 싶다.
‘신이시여, 저 평생 나쁜 짓만 한 나쁜 놈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주셔도 좋으니 이 절만큼은 끝까지 마치게 해주세요.’ - 본문 353p
◇ 살아있을 땐 없던 '존재감', 죽고 존재하지 않으니 생겼다
「유령생활기록부」를 쓴 작가 나혁진은 허영풍의 삶과 죽음 이후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존재가치를 드러낸 유령"이라고. 살아생전 돋보인 적 없던 허영풍이 죽었다고 대단하게 눈에 띄는 존재로 변하는 건 아니지만, 허영풍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자기 주변 사람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
'죽음'을 다룬 이야기지만 무겁지 않고, 천근만근 현실의 문제를 오히려 가볍게 대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죽었다고, 유령이 됐다고, 한 순간에 전지전능한 능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존재감은 제로지만, 유령 허영풍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죽음 이후 유령의 삶을 조금씩 성장시킨다. 허영풍의 '생기부'에는 어떤 내용이 적힐까. 허영풍은 유령의 삶을 끝내고 다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유령생활기록부」에서 확인해보자.
소설가 나혁진은 인천 출신으로 시공사, 들녘, 작가정신 등의 출판사에서 주로 소설을 편집하는 편집자로 일했다. 하드보일드 느와르부터 액션 스릴러, 본격 추리, 로맨틱 추리극까지 신선한 소재와 다양하고 획기적인 장르의 결합을 보여 왔다.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1」에 참여했고 장편소설 「브라더」, 「교도섬」, 「낙원남녀」, 「상처 검은 그림자의 진실」을 발표했다. 「브라더」는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이며 「상처」는 프랑스 판권 계약이 완료되어 번역, 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베이비뉴스에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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