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 머리는 풍성해지고 아비 머리는 허전해지고
성장과 노화의 격세지감
[연재] 추주형의 명랑가족 창조기
아들(이름 연재, 2011년 12월 11일생)이 만 13개월을 넘기던 때였죠. 제가 베이비뉴스 첫 칼럼을 웹상에 출판한 게요. 편집국장님의 고마운 제안을 받고도 첫 칼럼을 작성할 때까지 한 달은 걸린 것 같은데, 두 번째 칼럼 작성도 어느새 40일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나름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꼬박 작성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그게 참 안 지켜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연재의 삶을 일기처럼 작성해 훗날 소중한 선물로 안겨주고 싶지만, 사는 게 참, 마음 같지 않네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시간의 흐름’이 머릿속에 키워드로 남았습니다. 이번 칼럼 주제도 여기에서 착안했고요. 아마 이번 칼럼은 신체적 형질의 변화에 대한 가족생활상을 주제로 작성하게 될 것 같고, 다음 칼럼은 사회적 유전에 대한 소회를 읽는이 여러분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칼럼을 자주 쓰기로 마음도 다잡았고요.
◇ 노화
5년 전이죠. 나이가 30줄에 들어설 무렵, 미용사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탈모방지제를 추천해 줬습니다. 머리 가마가 5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크다며 밤잠을 설치게 만들더군요. 상술인걸 알면서도 한동안 눈에 자주 띈 제품은 탈모제, 발모제, 가발 등 머리털 관련 상품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노화현상을 어찌 거역하겠냐마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르더군요.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죽기 전까지 불사(不死)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로 자위나 하고 있을 때 쯤, 아들 연재가 태어났습니다.
◇ 성장
아들은 현재 15개월이 지나도록 머리숱이 풍성했던 날이 한 번도 없습니다. ‘동자승(童子僧) 같다’며 귀여워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배냇머리를 밀어줬냐고 묻지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지요. 그렇게 아이 성장발육에 기뻐하는 사이, 저를 비롯해 본인들 머리 가마 넓어지는 건 까마득히 잊습니다.
저로서는 머리 감기기 편하니, 아들이 외모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 계속 이대로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내도 저도 어린 시절 머리숱이 적었지만 성장기엔 무척 풍성했으니 별 걱정도 안 되고요.
그런데 요즘 연재를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로부터 부쩍 머리가 까매졌다는 얘길 듣습니다. 풍성하진 않아도 머리숱이 많아졌다는 건 반가운 소식입니다. 발육에 불편함이 없다는 아들 녀석의 소리 없는 외침이기도 하고,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 부모 마음
아비가 샤워를 하며 녀석의 머리를 감깁니다. 두어 번 머리를 감긴 뒤부터는 알아서 눈도 감고 협조를 잘 해 주는 게 대견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부자(父子)가 함께 따뜻한 물에서 놀고 나니 애정은 더해지고 노폐물은 빠집니다. 여기저기 붙은 비누거품과 함께 머리털을 씻어내니 욕실도 함께 샤워를 한 것 같습니다.
어미와 크림 바르기 놀이를 하며 모자(母子)가 정을 나눈 뒤 노곤한 몸을 눕히면 잠들기 전까지 잠시나마 여유가 생깁니다. 부부(夫婦)의 소중한 사색 시간이지요. 하루는 ‘내 머리숱 허전해질 때 아이 머리숱은 풍성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머리털 빼서 아이 머리털 채우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게 채움이라면 저는 충분히 비울 겁니다.
◇ 격세지감
부모 마음이란 게 다 그럴 겁니다. 본인은 굶어도 자식 먹는 것 보며 배부르다는 걸 이제야 몸으로 깨닫습니다. 아들 성장을 보며 제 노화를 알아차릴 때 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물밀 듯 밀려들었습니다.
60갑자(甲子)를 다 채우지 못하고 소천하신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아직 20대인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더디 가던 시간이 어느새 빨리도 흐르지? 10대엔 10킬로미터, 20대엔 20킬로미터, 30대엔 30킬로미터, 40대엔 40킬로미터로 가는 게 세월이란다. 시간이 아니라 젊음을 사거라.” 마지막 말씀이 ‘사거라’인지 ‘살거라’인지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머님 말씀대로라면 저는 고작해야 35킬로미터입니다.
내일은 인천에 홀로 계신 아버지 집에 가는 날입니다. 매월 첫 주 토요일마다 뵙고 있는데, 지난달엔 중순에 설도 있고 어머님 기일(6주기)도 있어서 그 이상으로 자주 뵀습니다. 연초라 일도 많다는 핑계까지 더해 이달은 중순에야 들르자니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겐 살 떼어 고픈 배 채워주고 싶은 그리운 아들 녀석이겠지만, 이제는 그런 사실 자체가 가슴 아린 계절입니다.
금방 시동 건 아이 머리숱과 35킬로미터 제 머리 가마를 비교하며 격세지감을 느낀 아들며느리 내외가 내일 고향에 갑니다. 이제 곧 70킬로미터로 달리실 홀아버지의 격세지감이 어떨지 뭉클한 가슴 안고 차에 오를 겁니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 시나브로 삼대(三代)의 세월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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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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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2013.03.18 18:12
ㅋㅋ 아가가 쑥쑥 커가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