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생활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부모의 재산일까. 자녀의 성공일까.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지만 정작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건강, 사랑, 시간 등은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다. 이런 보편적 가치들에 대해 가족구성원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안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연구보고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가족의 형태나 생활, 가족구성원의 가치관 등을 알 수 있는 여러 지표를 통해 좋은 가정과 국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특히 ‘가족생활의 질’을 주제로 가족 행복의 요건과 가족생활 만족도를 조사한 챕터에서는 성별, 연령별 등 응답자의 특성별 의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어 눈길을 끈다.
◇ 부모 세대의 '가족생활, 대화 만족도' 낮은 편
전국 기혼 가정 15~64세 응답자 1만 22명을 대상으로 '가족 간 대화나 친밀도'를 조사했더니 자녀 세대인 15~29세 응답자보다 부모 세대인 50대 이상 응답자의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5~29세 응답자는 72.2%가 ‘만족한다’고 답한데 비해 60세 이상 응답자의 44%, 50~59세 응답자의 53.1%만이 ‘만족한다’고 답한 것. 이혼이나 별거 중인 응답자는 34.5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유배우 가족은 61.9%가 ‘만족한다’고 답해 유배우 가족의 가족 간 대화나 친밀도의 만족도가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가족생활의 만족도 역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느끼는 정도가 달랐다. 15~29세 응답자는 69.2%가 ‘만족한다’고 답한데 비해 50~59세 응답자의 41.8%, 60세 이상 응답자의 36%만이 ‘만족한다’고 답해 고연령일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2.4%의 여성이 ‘만족한다’, 41.7%의 남성이 ‘만족한다’고 답해 남성보다 여성의 가족생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생활을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은 결과 63.9%의 응답자는 ‘동일하다’고 응답했다. 20.3%는 ‘더 좋아졌다’, 15.0%는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더 나빠졌다’고답한 이들에게 ‘가족생활이 더 나빠진 이유’를 묻자 각 응답자의 가장 많은 수인 70~80%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을 우선으로 꼽았다.
◇ '가족생활 만족도' 남성이 여성보다 낮아
가족원의 갈등문제 해결 만족도를 물은 결과 여성 응답자와 나이가 어린 응답자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7.1%의 여성 응답자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38.8%의 남성 응답자가 ‘만족한다’고 답해 남성이 여성보다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8.8%의 여성 응답자가 ‘불만족한다’고 답하고 16.7%의 남성이 ‘불만족한다’고 답해 남성이 여성보다 불만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문화 및 여가활동에 대한 만족도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9.1%의 여성 응답자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30.9%의 남성 응답자가 ‘만족한다’고 답했으나 18.4%의 여성 응답자가 ‘불만족한다’고 답한 데 비해 29.2%의 남성 응답자가 ‘불만족한다’고 답해 남성의 만족도는 여성보다 떨어지고 불만족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노동 분담에 대한 만족도는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51.8%가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42%만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불만족한다’고 답한 경우는 남성은 3.9%에 불과했지만, 여성은 18%나 됐다.
◇ 가족 행복의 중요 요건 1위 ‘가족의 건강’
가정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건을 물은 결과 전체 조사대상의 44%가 ‘가족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41.7%의 응답자는 ‘가정의 안정’을 꼽아 뒤를 이었다. 나머지 응답은 대부분 2~3%의 비율을 보였는데, 3.9%가 ‘권력이나 재산이 있어야 한다’를, 3.5%가 ‘배우자가 사회에서 제구실을 해야 한다’를, 3.0%가 ‘가족원 모두 일에 성공해야 한다’를, 2.8%가 ‘자식이 사회에 나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를, 나머지 0.5%가 ‘효성이 뛰어난 자녀가 있어야 한다’ 등을 꼽았다.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60세 이상(54.5%), 50~59세(47.3%), 40~49세(43.9%), 30~39세(40.8%), 15~29세(33.1%) 순으로 가족 행복의 중요 요건은 ‘가족의 건강’이라고 답해 연령이 높을수록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5~29세(50.6%), 30~39세(45.3%), 40~49세(42.1%), 50~59세(39.2%), 60세 이상(33.1%) 순으로 가족 행복의 중요 요건은 ‘가정의 안정’이라고 답해 연령이 낮을수록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측은 "우리나라 국민은 가족 행복의 요건으로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안정을 성공이나 권력, 재산보다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족문화와 여가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해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가족단위 문화와 여가를 누리며 가족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가족여가문화 활성화와 남성의 가족생활 참여 확산 문화 조성 정책 등이 가족생활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