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없는 우리집
텔레비전 없는 우리집
  • 칼럼니스트 원혜진
  • 승인 2011.02.16 17:04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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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가장 좋은 놀이대상은 가족이다

[연재] 우리집 보물 넷, 사람 만들기

 

우리 부부는 2003년 결혼할 때 텔레비전을 사지 않았다. 2008년 셋째를 출산할 당시 시동생이 텔레비전을 바꾸면서 그전 텔레비전을 우리 집으로 보내 주었는데, 그 때 몇 개월 정도 보다가 다시 다른 집으로 보냈던 것이 다이다. 그 이외에는 텔레비전이 죽 없었고, 시청료도 내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인터넷을 통해, 혹은 텔레비전 카드를 컴퓨터에 추가해서, 컴퓨터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 우리 부부가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집에 갔을 때 텔레비전이 켜져 있으면 (대부분 그러한 경우가 많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보고, 우리 삼형제도 마찬가지이다. 큰아들은 텔레비전에서 주구장창 하는 만화영화를 그야말로 주구장창 보고 싶어서, 주말에는 외갓집에서 자겠다고 할 정도이다. 남편은 특히 일요일 오후에 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별 일이 없으면 친정에 가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저녁을 먹고 돌아오곤 한다.

 

다만 우리 부부는 텔레비전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더구나 아이를 키우면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요즘에야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운동도 있었고, 그래서 가족들의 공간인 거실에 텔레비전을 치운 집들이 꽤 되지만, 그 때만 해도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했다. 우리집이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고도 하고, 텔레비전을 왜 안 샀느냐고 물으시며 하나 사줄까 하는 어른들도 계셨다.

 

그 전에는 막연하게 텔레비전이 있으면 별로 좋지 않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몇 달 정도 텔레비전을 두고 보다보니 더 확실하게 나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원래 없던 물건이라 가족들 모두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았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 잠든 밤에 영화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마침 몸조리를 하는 중이라 심심해서 낮에도 텔레비전을 켜게 되었고, 식사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교육방송을 틀어주게 되었다. 아이들은 점점 텔레비전에 빠져들었고, 리모콘을 사용하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장난을 쳤다. 그리고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앞으로 가서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해서 보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한 번 텔레비전을 틀면 끄지를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느라 할 일을 못 할 지경이었다. 딱히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텔레비전에서 하는 아무 프로그램이나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점차 텔레비전이 일상이 되어갔고, 아침에는 아이들 교육방송 프로그램, 끝나면 아침드라마, 저녁에는 무슨 드라마, 무슨 드라마, 요일별로 시간표가 쫙 세워졌다. 심심하진 않았다. 심심할 새가 없었다.

 

광고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광고를 보며 푹 빠져들어서 다 사달라고 말했고, 다 가져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다. 소지품을 구입할 때마다, 튼튼하고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붙어있는 것으로 사달라고 했다. "미쳤어!"라고 하는 유행가를 따라불렀고, 무슨 말이지도 모르는 유행어를 따라하며 웃었다. 폭력적인 만화영화가 너무 많았고,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온갖 음모가 난무하는 만화영화는 7세부터 시청할 수 있다고 떡하니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만화를 보면서 큰아들은 청산가리같은 독극물 종류를 배웠다.)

 

이전의 조용한 집이 그리워질 무렵, 남편도 텔레비전을 치우자고 말을 꺼내왔다. 당시 다섯 살, 세 살이던 아이들은 반대했지만, 아이들이 없는 사이에 친정으로 물건을 보내버렸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나는 집에 있는 동안 음악을 듣거나, 아기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어린이집에 다녀와 보고 싶은 동영상이나 만화영화를 택해 한 시간 정도 보게 해 주었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무차별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엄마 아빠가 보여주고 싶은 좋은 작품 위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선택한 작품을 집중하고 반복해서 보면서 아예 대사를 외웠고, 그럴 때면 자막을 틀어주어 다양한 외국어도 듣게 해 줄 수 있었다. 밖에서 더 많이 놀았고, 집에 와서는 책을 더 많이 읽었고, 가족들간에 이야기도 더 많이 했다.

 

형아 따라쟁이들. 형이 책을 보면 꼭 옆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본다. 2011년 2월. ⓒ원혜진
형아 따라쟁이들. 형이 책을 보면 꼭 옆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본다. 2011년 2월. ⓒ원혜진

 

지금도 컴퓨터로 만화를 볼 때면, 아이들은 눈으로 멍하니 화면을 쫓아갈 뿐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영상을 보는 때 외에는 정말 활동적인 아이들이 (노느라 바빠서 아무것도 안 보는 날도 있긴 있다) 눈 앞에 뭔가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대로 사고의 활동을 멈추는 듯, 어른들보다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이제 큰아들이 여덟 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니 컴퓨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엄마 아빠가 컴퓨터로 일을 해야하는지라 컴퓨터를 없앨 수는 없지만, 어느 때 보면 심각하게 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어른들의 일하는 도구이며 정보를 찾는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아빠는 그 좋아하던 인터넷 장기 게임도 끊었는데, 아이들은 금방 컴퓨터가 장난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영화도 보여주고 게임도 할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신기한 장난감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하고 끄는 절제가 가능하지만, 아이들 있는 시간에는 되도록 컴퓨터를 켜 놓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핸드폰 역시 좋은 장난감이다. 사진도 찍고 게임도 찾아서 한다. 큰아들은 단축번호를 사용해 다른 가족들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낸다. 한글을 아직 모르는 둘째도 게임을 하려고 아빠가 오시면 핸드폰부터 찾는다. 게임은 10분, 사진이나 동영상 찍고 놀기는 조금 더 허용하고 있고 아직은 잘 지켜지고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이 하나의 유용한 육아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하나 이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아직 스마트폰을 사용할 계획이 없다.

 

아이들을 텔레비전에, 컴퓨터에, 핸드폰에 맡겨두는 것으로 어른들이 잠깐 편하게 쉴 수는 있다. 급할 때에는 정말 유용하게 쓰여 감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집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감은 엄마이고, 아빠이고, 형제들이다. 서로서로 함께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그 다음은 책이다. 아이들이 조용해서 방에 가보면 큰형 따라서 셋이서 옹기종기 책을 읽고 있다. 그림만 보기도 하고 책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책 보고 나면 그림도 그리고, 종이 오리기도 하고, 색종이 접기도 하면서 논다. 텔레비전이나 게임기처럼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아직 어리니까 가능한 풍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제 더 머리가 커지면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할 것이고, 또래가 가지고 있는 게임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때가 조금이라도 늦게 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때가 와도 또 사춘기가 와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가족들이며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가족들과 하는 놀이였음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오늘도 아이들을 기계에 맡겨두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이 옆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놀아주어야지. 나중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이나 아이의 친구들 등의 것에게 순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칼럼니스트 원혜진은 아들 셋(04년, 06년, 08년생)을 키우며 넷째 딸(2011년 3월 출산 예정)을 임신한 주부이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원, 도서관 등에서 논술 강사로 일해왔으며, 커가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전업주부로 전향할 계획이다. 홈스쿨링과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며, 집안일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책 읽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철없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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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011-04-19 23:29:00
아이를 위해서는 단호하게 없애야 하는데..
정말 요즘 광고며 드라마며 뉴스며 모든 것이 무서운 일들과 참..
안 좋은 것이 많더라구요. ㅜㅜ
없애면 참 좋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tv봐야하고.. 요즘 아이들 dvd 시청 교육

brose**** 2011-04-14 23:18:00
tv 고민이 많아요..
아무래도 tv가 없어지면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만큼 엄마가 많이 바빠지겠죠..
솔직히 제가 해야할일이 있을때 아이에게 tv를 보

dkdleldi**** 2011-02-28 18:24:00
저희..
저희딸도 하루종일 텔레비젼만봐요..
끄면 킬때까지

rnldus**** 2011-02-28 16:03:00
없애고 싶지만
할머니가 티비를 워낙 좋아하셔

woohyu**** 2011-02-23 16:51:00
거실에는
치웠지만...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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