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으로 치른 잊지 못할 결혼식
주례 선생님, 처음처럼 사랑하려며 소주를...
“부케 받겠다고 나서는 친구가 없었어요. 네가 던진 ‘그걸’ 받자니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서. 제가 웨딩드레스를 안 입고 한복 드레스를 입느라 나무로 조각한 기러기를 들었거든요. 한복에 부케는 안 어울리니까 그걸 들어야겠다 생각한건데 부케 받을 사람 생각은 차마 못 한 거죠.”
전혜진(34) 씨의 결혼식 에피소드는 바가지로 시작해 원앙으로 끝난다. 전통혼례를 올린 것은 아니다. 일반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손님들은 뷔페로 식사를 대접했다. 단지 전통혼례에 사용하는 몇 개의 소품을 사용했을 뿐인데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결혼식이 됐다.

전 씨가 범상치 않은 물건들을 결혼식에 사용하게 된 건 사실 결혼비용을 줄여보려는 심산에서 시작됐다. 결혼을 하려고 보니 쓸 수 있는 예산은 월세 보증금을 합쳐 1000만 원가량 되는 돈이 전부였고, 그래서 전 씨는 실질적으로 결혼 준비 비용으로 쓸 수 있는 500만 원을 쪼개고 쪼개 예산을 잡았다. 신혼여행을 계약하는 데 그중 절반가량을 썼고, 예물 예단을 샀고 세간을 샀고 이사를 했다.
그래서 웨딩 서비스 상품 구매를 앞두고 난관에 부딪혔다. 뭔가 있어 보이는 브랜드 네임을 가진 상품이 기본가부터 비쌌고 추가 옵션 비용이 여기저기 난무했다. 150만 원 남짓한 돈으론 턱도 없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결혼식에 환상이 없던 전 씨였다. 그녀는 “결혼식 생략하고 친구들 불러 피자에 맥주 파티하고, 신혼여행 가서 실컷 놀다 오는 게 평소 바람이었다. 상황상 결혼식을 하려고 보니 업자들이 만들어 낸 이상한 풍속에 신랑 신부가 놀아나는 느낌이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복 드레스를 선택한 건 그 이유에서다. 웨딩드레스를 굳이 입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데 비용까지 터무니없다면 굳이 입을 이유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저렴한 웨딩드레스를 사 입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전 씨 피부에는 화이트, 아이보리 계열 드레스보다는 짙은 색 계열의 옷이 잘 어울렸고, 추억으로 남길만한 결혼식을 계획하다 보니 더더욱 한복 드레스를 입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당시 12년 차 연인이던 현재의 남편 정석문(36) 씨는 전 씨의 계획에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웨딩드레스 입은 전 씨를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전 씨는 정 씨를 설득해 서로 예식용 한복을 입기로 하고, 덤으로 소소한 이벤트까지 구상해 같이 하자 졸랐다. 이벤트의 첫 관문은 바가지 깨기였다.
예식 당일 두 사람이 동시 입장하는 주단 입구에는 큼지막한 바가지가 놓였다. 전통혼례에서 신부 집에 함을 들일 때 잡귀를 쫓는 의식으로 함진아비가 바가지를 밟아 깨는데, 신랑이 입장하며 직접 바가지를 깼다. 신부 전 씨의 손에는 부케가 아닌 목안 한 쌍이 들렸다. 전통혼례에서 나무 기러기는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던 물건이다.

주례로 나선 두 사람의 은사는 여기 한술 더 떠 두 사람에게 소주를 따랐다. 결혼식 전 주례 때 술을 따르시겠다는 은사의 말에 표주박을 준비한 두 사람은 예식 날 처음처럼을 단숨에 들이켰다. 신랑에게 목을 축일 정도의 술을 따른 은사는 신부의 표주박에는 찰랑거려 넘칠 만큼의 소주를 따랐다. 애정의 정도였을까. 은사는 “결혼식 주례에 ‘처음처럼’이라는 말을 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게 어딨겠냐”고 눙치며 좌중을 폭소케 했다.
나무 기러기 부케를 혹시 머리에 맞아 혼삿길은 고사하고 황천길 걷지 않을까 걱정하는 친구를 위해 전 씨는 예식 전날 곰돌이 인형을 준비했고, 곰돌이는 무사히 친구에게 안겨졌다. 퇴장하는 두 사람을 향해 친구들은 미리 한 줌씩 쥐어놓은 팥을 던졌다. 팥 역시 잡귀를 쫓는 의미로 전통혼례에서 던져지던 것이다.
단순히 돈을 아끼고 축의금이나 많이 걷자는 궁색한 의도였다면 볼 성 사나운 결혼식이 될 수 있었겠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은 3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주변에서 툭하면 오르내리는 유쾌한 화젯거리가 됐다. 전 씨는 이를 널리 이롭게 알리자는 생각에 블로그며 트위터에 빠짐없이 이 과정을 기록했다. 결혼기념 100만 원 기부를 합쳐 결혼까지 쓴 비용은 1110만 원.
“나만의 결혼식이라는 말들 많이 하는데, 우리 결혼식은 이보다 더 신랑 신부가 돋보일 수 없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을 하는 이유가 비용을 많이 들여 남들 보기 좋으라고, 나를 과시하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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