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단체생활 적응기
우리 아이 단체생활 적응기
  • 칼럼니스트 서혜진
  • 승인 2011.03.28 14:32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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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대화가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연재] 연년생 아이와 함께 하는 워킹맘 시테크

 

“다은이가 1등! 선생님, 안녕하세요. 엄마, 다녀 오세요.”

 

아침 7시 30분 다른 친구들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등원한 큰딸 다은이가 어린이집 현관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늘처럼 엄마와 자연스럽게 헤어지기까지 2주가 걸렸다.

 

지난 2주 동안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선생님께 맡기고 출근할 때는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웠다. 그렇게 울던 아이가 이젠 인사도 곧잘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어린이집 적응기가 반쯤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 있었던 아이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어린이집에 적응하기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며칠 전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엄마를 보면 안겨서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가 그날은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토라져 있더니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렸다. 처음 보는 아이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아이의 태도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누워 있던 아이가 이불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엄마 미워!” 하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가 자신을 떼어 놓고 가버렸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화가 났던 모양이다. 금방 풀릴 것 같진 않던 아이를 달래며 엄마가 회사를 가야 했던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 그제야 아이가 이불 속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29개월이 된 아이지만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없어서 싫었다는 둥 선생님이랑 친구가 무서웠다는 둥 오늘은 밥이랑 두부랑 먹었다는 둥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꽤 많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엄마가 밉다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화를 내는 다은이의 모습에 엄마는 당황하게 된다. ⓒ서혜진
엄마가 밉다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화를 내는 다은이의 모습에 엄마는 당황하게 된다. ⓒ서혜진

 

“다은이 왜 이불 속에 들어갔어?”

 

“엄마가 미워서!”

 

“우리 다은이는 엄마가 왜 미웠지?”

 

“엄마가 없어서!”

 

아직 말이 서툰 아이지만 대화를 통해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이해가 된다. 아이를 보육해주는 선생님이 있었지만 아이는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단체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 눈치 보랴 친구들과 경쟁하랴 아이는 의기소침해진다. 항상 느긋하게 기다려 주던 엄마도 없다. 규칙대로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고 화장실도 스스로 다녀와야 하고 밥도 스스로 먹어야 한다.

 

이러한 낯선 환경에 아이는 스스로 자립하는 마음을 갖게 되겠지만 그와 더불어 마음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놓게 된다. 아직 감정이 온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게 된다면 아이는 마음의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이의 단체 생활 적응기를 2주로 보고 있다. 2주가 지나면 아이는 엄마와 자연스럽게 이별할 줄도 알고 혼자서 낮잠도 자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겉으로는 어린이집에 적응해 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마음의 병을 키워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퇴근 후 아이와의 대화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퇴근 후 아이를 서둘러 재우려 하진 않았는지 아니면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굳은 얼굴로 집안 일만 하면서 아이를 TV 앞에 앉혀 놓고 있진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보자. 아이가 그 작은 가슴에 하고픈 말을 가득 담아 두고 엄마와의 대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끝나 가는 바로 지금 아이의 말문이 닫히지 않도록 귀 기울여 주고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는 항상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혜진
아이는 항상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혜진
 

*칼럼니스트 서혜진은 외국계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하는 6년차 워킹맘이다. 30대 초반에 연년생 두 아이(25개월 다은이, 10개월 고은이)의 엄마가 됐지만 육아와 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활용하는 지혜로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이 시대 똑 소리 나는 워킹맘이다. www.dago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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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kim**** 2011-04-21 03:35:00
가족과의 대화...
그 시간이 너무 부족한거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건

no**** 2011-04-13 15:52:00
참..
저도 직장맘인지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하는데.. 아직은 어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어른들도 낮선곳에 가면은 두렵고, 겁나는데.. 작은 아이들은 오죽하겠어요.
모든 것이 낮설고, 무섭고, 겁나고..
어쩔

mythr**** 2011-04-13 15:07:00
눈물이 핑 도네요
엄마에게 토라졌다는 마음이 이해되기도 해요
난생처음 낯선 곳에서 지내려니 그동안 할머니랑 지냈을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으니 말이예

brose**** 2011-04-12 13:33:00
울아들도.. 적응하는데 힘들었네요
어린이집 보내고 적응 시키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지금도 아침마다 안가면 안되냐는데.. 에

wo**** 2011-04-11 10:56:00
이런 글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어요.
저또한 조금 있으면 일을 할거구..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데
남일 같지 않네요.
아이의 눈높이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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