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책 읽기는 엄마랑 함께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힘이 빠진다. 아침에 눈 뜨면 책 먼저 뒤적이고 언제든 책을 끼고 놀기에 독서를 강요할 필요가 없는 아이. 그런 내 아이가 책 근처에도 안가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나를 고통스럽게 한 적이 있다.
바로 둘째를 임신했을 때다. 입덧이 심해 아이에게 책을 못 읽어줬다. 도서관 나들이는커녕 뭘 하고 노는지 돌아볼 기운이 없어 책 읽어 달라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 힘들어. 너 혼자 읽어!’ 평소 같지 않게 짜증을 냈었다.
어느 날 아이가 이상해 손을 살펴봤더니 심하게 물어뜯어 피가 나있는 게 아닌가.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그곳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기는 물론 모든 수업 참여에 미온적이고 구석에서 이 손톱 저 손톱 물어뜯기만 한다는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입덧을 겨우 참으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이는 책을 힐끗거릴 뿐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남편까지 나서 “너 요즘 왜 책 안 읽니!”하고 다그쳤다. 우리 부부가 독서를 강요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아이는 책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손톱에 피를 내며 고집스럽게 세 달을 보냈다.
입덧이 끝나 책을 읽어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이는 책을 잔뜩 들고 걸어왔는데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엄마를 테스트(?)하는 듯 했다. 그 날 아이가 한 말이라곤 “읽어 줘”, “읽어 줘.” “읽어 줘. ” “또 읽어줘.”가 전부다. 아이의 월령이 높았더라면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다시 들어보자. 읽어줘,라는 말은 “엄마가 미워. 미웠어. 사랑해줘. 사랑해줘. 계속 책을 읽어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의 다른 표현이다.
너무 미안해 코끝이 찡했다. 한권, 두권. 세권...... 열권. 그날 아이가 들고 온 책을 몽땅 읽어 주었고 그만 읽으라고 할 때까지 책장을 덮지 않았다. 우리 아이에게 책은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수단이자 엄마 사랑을 확인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이제 악몽 같은 시간은 지났다. 38개월 된 아이는 제 페이스를 찾아 독서를 즐긴다. 방이며 거실에는 예전과 같이 책이 널브러져 있고 나 역시 입덧이 끝났기에 정성을 다해 책을 읽어 주고 있다. 모든 상황이 여기서 종료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달이면 둘째가 세상에 나오기 때문에 큰 아이를 돌보는 데 비상이 걸렸다. 그래도 있는 힘껏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책은 '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칼럼니스트 김진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독서논술지도사로 활동했습니다. 출산 후 글쓰기에 전념. 현재 시민기자와 수필가로 활동중입니다.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 예쁜 옷은 못 챙겨줘도 책읽어주기만큼은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믿는 ‘읽기광’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