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메모는 알뜰한 결혼의 지름길
결혼준비, 꼼꼼하게 따져보고 합시다
[연재] 결혼문화 'Something four'
지금 소위 결혼 적령기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사람들이 아직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를 산다고 하면 값비싼 대기업 PC를 구입하기보다는 용산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부품들의 안정성과 상성이 좋고 AS가 확실한 대신 값비싼 대기업 PC대신,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성능 위주로 옵션을 추가하고 변경할 수 있는 반조립 PC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사실 컴퓨터를 구입하는 일은 결혼준비를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대기업의 풀옵션을 구입하겠지만, 한정된 예산 속에서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예산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잘만 발품을 팔고 부품간의 상성을 맞추면 한정된 예산 안에서도 내게 꼭 맞는 성능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몇 년에 한 번 구입하는 PC도 제대로 구입하려면 이만큼 신경을 써야 하는데, 하물며 대개는 평생 한 번, 많아야 두세 번이 고작인 결혼식을 준비하는데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PC를 구입할 때 보다 더 영리하게 결혼을 준비하는걸까? 조립품 PC를 구입할 때에도 가격과 성능을 하나하나 고려해서 리뷰를 보고 부품간의 상성을 따져보는 마당에, 웨딩은 그만큼 하나하나 따져보고 결정하는 걸까? 불행히도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알뜰한 결혼을 준비하고 싶은 현명한 예비부부들은 결혼관련 책자와 잡지, 각종 카페나 커뮤니티 등에 가입하여 알뜰하게 식을 준비할 수 있는 정보들을 모으지만, 웨딩잡지란 돈을 주고 사는 광고지요 웨딩 커뮤니티란 기실 업계 관계자들의 치열한 홍보의 장이다 보니, 이 정보라는 것 자체가 한없이 부실한 것이 문제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예식 비용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들쑥날쑥한데다 세목별로 나뉜 것이 아니라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다보니 비교 분석 자체가 쉽지 않고, 이미 결혼한 사람들의 블로그도 이벤트 참여 후기가 반이 넘는다. 게다가 요즘은 웨딩플래너가, 자기가 담당한 예비신부가 돌아본 업체에 대한 불만을 블로그에 쓰면 전화를 걸어 소위 '관리질'을 하는 경우도 있는 마당이니,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는 고사하고 내 웨딩플래너를 믿어도 좋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렇다보니, 나중에는 스스로 발품 팔아 알아본 것 외에는 믿을 게 없다는 결론마저 나온다.
필자는 본인의 결혼 준비를 할 때는 물론, 바로 작년에 결혼 관련 서적을 집필할 때에도 결혼을 앞둔 친구들과 함께 웨딩업체나 웨딩박람회를 돌아보았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상담을 받을 때 하나하나 꼼꼼하게 적고 있으면 반드시 눈치를 준다는 것. 결혼 처음 해 보는 것이니 아는 것도 없고 용어 하나하나가 낯선데다 숫자들이 쏟아지는데, 그걸 꼼꼼히 기록하고 있으면 경청해달라며 짜증을 내거나 빈정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내 수첩을 빼앗아 탁 덮어서 돌려준 분도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적지 않으면, 오늘 처음 본 웨딩플래너 혼자 일방적으로 기록한 것을 가계약서라고 내놓는다. 기록한 것과 맞추어 보면 말만 하고 가계약서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스스로 발품 팔아 알아본 것 외에는 믿을 게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이렇게 결혼준비를 해야 할까?
큼직한 노트를 들고 다니자. 플래너가 하는 말 하나하나 다 기록할 태세로 상담을 받아보자. 반조립 PC 한 대를 맞출 때에도 가격과 성능을 하나하나 고려하고 옵션을 넣거나 빼며 따질 것을 따지는데, 웨딩은 그렇게 못할 게 어디 있는가. 뭉뚱그린 가격 안에서 최대한 세목을 유추해보자. 모르겠다면 물어라도 보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메모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런 웨딩플래너와는 더 이야기할 것도 없다. 아직 용산이 PC조립의 메카이던 시절, 던전이라 불릴 만큼 호객행위 악명높았던 그곳에서도 가격이나 성능에 대해 적는 것으로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적자. 적고 따져보고 제대로 된 데이터를 공유하자. 결혼준비란 그 자체가 큰 지출이 수반되는 쇼핑이고, 우리는 호객행위에 끌려다니며 정신 못 차리고 이것저것 구입하는 '호갱님'이 아니니까.
*칼럼니스트 전혜진은 수학과 기계공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내추럴 본 공돌이이자 퇴근 후에는 SF소설과 만화 스토리를 쓰는 작가다. 주변의 온갖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메모하는 것을 즐기며, 자신의 결혼과정을 꼼꼼히 메모하며 생각했던 일그러진 결혼문화들을 '천만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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