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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라는 말 뒤에 숨지 마세요

웨딩커뮤니티 댓글에 의존하지 말고, 신랑과 당당히 의논하라

heyjinism@gmail.com

[연재] 결혼문화 'Something four'

 

스무고개를 하나 하자. 결혼을 준비하며, ‘스드메’를 고르는 신부들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때 밥 먹듯 들어가는 단어가 하나 있다. 이 단어는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보이지도 않았던 단어로, 실재하는 병명도 아닌 주제에 모 예능프로에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썰까지 풀었던 전력이 있는데, 말하는 자신은 정말 잘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지만 대개는 이미 마음 속에 답이 정해진 경우가 많아 대답하는 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 삐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소위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상태를 유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단어 때문에 예비신부 주변 사람들, 예비신랑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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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어는 바로 ‘결정장애’다. 예전 같으면 우유부단해서 딱 부러지게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하던 것이, 요즘은 ‘제가 결정장애라서 말이죠~’ 같은 표현이 아주 당당하게 난무한다. 이전에는 이런 단어를 쓰지 않던 사람조차도, 결혼을 앞두고 웨딩커뮤니티에서 몇 주 놀다 나오면 이 말이 입에 달라붙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필자는 그다지 온화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 가까운 사람이 결정장애 운운하며 매달리면 정색을 하고 대답하긴 한다.

 

“진짜라면 병원에 가 봐야지. 장애 등급 받을 정도면 많이 아픈 거잖아?”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놓고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많아야 네다섯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두고 결정장애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장애 있는 분들께는 실례다. 대개 이 말은, 정말로 무언가를 고르지 못할 때 쓰이는 말이 아니다. “조금 무리다 싶긴 하지만 좋아 보이는 것과 내 예산에 맞고 적당한 수준인 것” 사이에서 어느 것을 고르는 게 좋을지 고민할 때 쓰이는 말이지만, 대개 예비신부가 원하는 답도, 웨딩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달아주는 답도, “결혼은 평생 한 번 뿐인데 무리하더라도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부추기는 쪽이다. 그저 듣고 싶은 대답을 듣기 위해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 싶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그 대답을 해 주는 사람들이 평생 당신의 선택에 대해 정답을 내려주진 않을 게 아닌가.

 

그런 뻔한 질문을 하는 예비신부의 마음 속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역시 결혼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내 주머니에서 모든 돈이 다 나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텐데, 언제나 예산은 부족하고, 예비신랑과 함께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신에게 없는 장애를 만들어 붙이고, 그렇게 모아 온 사람들의 반응을 꺼내놓고도 예산 때문에 좀 생각해보자는 대답을 들으면 그 반응을 또 커뮤니티에 올리고 예비신랑이 쪼잔하다거나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는 반응들을 즐기며 스스로를 결혼 앞두고도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몰 필요는 없다.

 

결혼 준비는 함께 하는 것이다. 예산도, 결정도, 혼자만의 몫은 될 수 없다. 그렇다보니 평생 한 번 뿐인 결혼이니까 잊지 못할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예비 배우자를 납득시키며 그 지출을 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다보니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결정을 떠넘기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잊지 말자. 그들은 당신의 결혼준비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잔소리를 하거나, 혹은 당신이 원하는 답을 말해주며 부추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신의 결혼을 책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야말로 오프라인의 친구들이라면 축의금이라도 보태줄지 모르지만, 웨딩커뮤니티에서 당신에게 영혼 없이 앵무새처럼 “평생 한 번 뿐인데”를 연발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김환타 님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유부녀의 탄생’에서는 예비부부의 결혼준비과정 중에서도, 이들이 어떻게 결혼 준비과정에서 올 수 있는 갈등들을 함께 원만히 극복해나갈 수 있었는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8화 ‘한복’ 편에서는, 이 커플이 “평생 한 번 뿐이니까 좋은 것을 하자”는 것은 비장의 카드로 세 번만 쓸 기회를 두고, 나머지는 예산에 맞추거나 생략하는 식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시작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 한두 가지 정도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평생 한 번 뿐이니까”라는 말의 마법은 정말 원하는 것 한두 가지를 위해 아껴두고, 꼭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의논하자.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결정장애라는 말 뒤에 비겁하게 숨지 말고, 당당히 의논하자. 결정장애라며 커뮤니티에 달린 댓글들을 보여주고는 “난 선택장애니까 네가 알아서 판단해”하고 말해놓고, 쪼잔하게 예산에 맞춰야 했고 두고두고 속상해하지 말고.

 

*칼럼니스트 전혜진은 수학과 기계공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내추럴 본 공돌이이자 퇴근 후에는 SF소설과 만화 스토리를 쓰는 작가다. 주변의 온갖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메모하는 것을 즐기며, 자신의 결혼과정을 꼼꼼히 메모하며 생각했던 일그러진 결혼문화들을 '천만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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