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의 눈이 이상하다.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아무래도 안과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평소 괜찮았다고 생각되었던 안과에 전화를 하니, 이사를 했단다. 간호사가 알려주는 위치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병원 문 닫기 1시간 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 10분이면 될 것 같은 거리였다. 휴대용 유모차로 바꾸고 나서는 그나마 유모차를 끌고 나가기가 쉽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땐 서로 마주보는 유모차가 좋다는 말에 솔깃하여 덩치 큰 유모차를 구입했다가 다시 중고시장에 되판 적이 있다. 사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여자 혼자 유모차 밀고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병원에 가기 전 현금을 찾기 위해 우체국에 들르기로 했다. 경사로를 타고 쭉 올라가 ‘미세요’란 팻말에 따라 문을 열었다. 열리는 듯 싶더니, 다시 밀려 닫혀 버린다. 한손으로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손과 어깨로 문을 지탱하고 열어보려고 하지만 유모차가 반밖에 통과하질 못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체국 내 경찰분이 문을 잡아주신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찾고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을 가기 위해 신호등 두 번을 건너야 한다. 보도블록들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울퉁불퉁 솟아났다가 내려앉았다 하는 곳들이 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쿵 멈추고 두 손잡이를 잡고 슝 밀어야 나가길 반복. 드디어 시내 길에 들어섰다. 번잡한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병원은 나 혼자 걸어 10분이지, 유모차를 밀고 가니 두 배는 더 드는 것 같다. 좁은 인도에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니 무슨 사람피하기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드디어 병원 도착. 아웃도어 옷 매장 2층이라고 했지? 쓱 살펴보니 안과가 보인다. 병원 입구 높은 턱 위에 유모차 앞바퀴를 올려놓고 위를 올려다보니, 가파른 계단이 실크로드 마냥 펼쳐져 있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저, 병원 앞인데요, 병원에 엘리베이터가 없나요?”
“네, 없는데요.”
“제가 유모차를 가지고 와서요. 이거 어떻게 올라가야할지….”
“ 저희가 따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요. 걸어서 올라오셔야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걸어 올라와야지. 정답이네. 할 수 없이 유모차를 접고(사실 접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한손엔 유모차 한손과 어깨엔 아기를 들쳐 메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간호사를 보자마자 ‘아 여기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아휴’ 하며 헉헉거리고 있다. 그러나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 간호사는 내 마음을 알 리가 없지. 진료를 마치고 나니 다시 계단을 내려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 그냥 1층 계단 옆에 두고 올걸 그랬나 싶다. 들고 갈 힘도 없어 이번엔 유모차 바퀴를 질질 끌며 위험하게도 계단을 탁탁 하며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고 있다. 병원에서 내려와 유모차를 낑낑대고 펴고 있으니, 한 아저씨가 와서 도와주신다. 유모차 펴고 접는 방법은 왜 그렇게 헛갈리는 모르겠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왕 시내에 나왔으니 빵이나 사 가지고 가자 싶어 빵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자동문. 그런데 갑자기 내가 코미디 배우가 되어 버렸다. 자동문을 누르고 높은 턱에 앞바퀴를 올리고 유모차를 미는 사이 문이 닫히고 마는 것이다. 높이 차이 때문에 유모차가 힘을 못 받고 앞으로 나가질 않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으로 겨우 올라와 빵집에 들어서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유모차 놓을 공간이 너무 좁아 눈치가 보일 지경이다. 그 와중에 뽀로로 케이크 사달라는 우리 아이.
그 다음으로 간 편의점에서는 아예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문밖에 대기 시켜 놓고 30초 만에 계산하고 나와 버렸다. 울랑 말랑 아가의 표정은 점점 울 준비를 하고 있고, 엄마의 마음은 너무 급해진다. 나와서 골목 끝까지 상점들을 보니, 거의 경사로가 없다. 아니 심지어 키즈카페에 조차 경사로가 없다.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밀고 온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이다.
평소에는 불편하지 않았던 시장길, 좁은 인도, 가게 홍보 풍선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계단 이런 것들이 유모차를 밀어보니 불편하다는 걸 알았다. ‘보편적 설계’(유니버설 디자인)라는 것이 있다. 특별히 누군가를 위해 추가 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건물에 턱을 없애고 넓은 입구를 만들어 놓는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이든, 유모차를 탄 아이든, 노인이든 젊은 사람이든 누구나 들어오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신체적으로 접근이 쉬운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유모차를 밀어보니, 보편적 설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편한 환경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모 안내]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기사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평소 동네에서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을 생생히 적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매월 우수 원고를 선정해 유아용품 전문기업 아벤트코리아(www.greaten.co.kr)에서 150만 원 상당의 최신 유모차(깜 플루이도)도 선물로 드립니다. 원고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
[Copyrights ⓒ No.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 기사제보 pr@ibabynew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