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길’이란 사전 정의상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2년차 부모가 된 저에게 길은 단순히 걷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아이를 유모차로 이끌어주는 일이 엄마로서 우리 아이에게 세상이 안전하고 믿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바람과 달리 제가 사는 울산 남구 일대는 유모차를 갖고 도보하기에 그리 녹록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시집와서 친구하나 없는 이곳에 처음 살게 되면서 저의 취미는 동네 산책이었습니다. 처음엔 동네 지리를 익히고자 돌아다녔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유모차로 아이에게 사람들이 사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장과 공원을 부지런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별 불편함 없이 다녔던 동네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다 보니 크고 작은 불편함이 피부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제가 사는 남구 야음동에는 근처 대형마트와 수암시장을 가기 위해 꼭 지나야 하는 사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길이 좁지만 인근에 아파트가 많은지라 차량이 많이 지나가고, 유모차 없이 성인 혼자 걸을 때도 늘 자동차를 앞뒤로 살펴가며 조심히 가야 하는 길입니다.
어쩌다 출퇴근 시간에라도 사거리를 지나게 되면 유모차 바로 옆으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유모차가 자동차에 치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휴대용 유모차는 위험해서 사용하기 겁나고, 디럭스 유모차가 지나가기엔 도로포장이 잘 되어있지 않아 유모차가 기울어져서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인도의 부재로 일반 주민들의 통행안전에도 위협을 줄 정도니 유모차를 끌고 가는 일은 더욱 불안하기만 합니다. 차를 위한 아스팔트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가장자리에 사람이 지나가야 하는 길은 매우 좁고 성인 한 명 겨우 지나다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마저도 바닥이 울퉁불퉁한지라 유모차를 끌고 갈 때는 흔들거림이 심합니다. 저는 이 길에 인도 및 안전난간 설치를 제안합니다. 자동차라는 교통수단을 위해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졌다면 유모차라는 영유아의 이동수단을 위해서는 안전난간으로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흔들림 없는 유모차 길을 위해 제대로 된 인도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불편한 길이지만 꼭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이 길을 지나야만 시내 백화점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에도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백화점들이 있는 주요 번화가인 삼산으로 가는 버스는 이 길목에서 탈 수 있는 마을버스가 유일합니다.
특히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도 드물고, 차량 종류가 시내버스와 달라 휴대용 유모차가 아니면 탈 수가 없습니다. 저 또한 유모차 대신 아기띠를 두르고 여름에 힘들게 버스에 탄 엄마들을 마주친 적이 많습니다.
또한 시내를 제외한 아파트 근처 다수의 마을버스 승강장은 제대로 공간이 확보되지 않고 배차시간도 전광판으로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은 경사진 곳에 표지판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서 유모차를 세운 채로 서있는 일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여름에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그늘 없이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두 배로 힘이 듭니다.
아이와 마을버스를 타고 문화센터에 가기 위해 휴대용 유모차를 갖고 나온 날, 어렵사리 버스를 탔지만 버스 안은 더욱 유모차를 갖고 타기엔 힘들었습니다. 시내버스보다 좌석간 간격이 좁아 유모차를 접더라도 다른 승객들의 공간을 차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모차를 갖고 탄 저는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어야 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도 주변 승객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유모차도 아이와 엄마에게 꼭 필요한 하나의 수단인데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을버스가 지역 주민의 가장 가까운 발이라는 점에서 유모차 이용자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5일은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된 지 17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변화하는 도심의 모습은 7대 광역시로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유아의 보행권에 관해서는 아직 사회적 관심이 낮은 편입니다. 광역시 승격 기념 주간을 맞아 울산 도시개발에 관한 지역 방송의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며, 도시계획 및 개발에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길은 왜 고려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울산 남구에서 기존의 행정중심 지역개발을 주민중심의 지역개발로 만들기 위한 사업들이 시행하기 시작한다는 반가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불법주차와 인도의 부재로 주민들의 통행안전에 위협을 주고 있는 옥동의 문수로 369번길 도로를 정비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지역 사업의 일환으로 ‘유모차 통행 가능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아이를 둔 울산 시민으로서 제안해봅니다. 유모차로 완전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도로명 길이 울산 남구에 몇 개나 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공원을 찾아가는 길에도 곳곳에 화단 및 휴식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시끄러운 자동차들과 삭막한 아스팔트를 지나야만 녹지공간으로 갈 수 있는 지금보다는 가는 길도 즐거운 아이와의 유모차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 저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올바른 길을 이끌어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자주 해왔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유모차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유모차가 덜컹거릴 정도로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고,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유모차를 두 손에 꽉 잡고 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주의해야 하는 일은 체구가 작은 저로서도 힘이 들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더욱 힘들 거란 생각을 합니다. 아울러 아이에게 세상이 이렇게 힘들고 험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길은 제가 부모로서 어떤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공간입니다. 첫째 아이에게 보여줬던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밝은 세상을 둘째에게는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희 남편이 울산에서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 현재 울산의 지역일꾼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처럼, 저희 아이도 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토대를 울산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공모 안내]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기사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평소 동네에서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을 생생히 적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매월 우수 원고를 선정해 유아용품 전문기업 아벤트코리아(www.greaten.co.kr)에서 150만 원 상당의 최신 유모차(깜 플루이도)도 선물로 드립니다. 원고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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