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품고 살아가는 너구리 이야기
[화제의 신간] 참깨밭 너구리

어느 밤, 달고개 마을 외딴집에 사는 화가 아저씨에게 수상한 손님이 찾아왔다. 눈자위가 거무죽죽한 게 틀림없는 너구리다. 아저씨네 참깨밭에서 우주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허락도 받지 않고 살기 시작한다. 제 나이가 자그마치 137억 살이라고 주장하는, 이 뻔뻔하고 황당하고 사랑스러운 물리학자 너구리를 어쩌면 좋을까?
신간 '참깨밭 너구리'(유승희 글, 윤봉선 그림, 책읽는곰 펴냄, 2015)는 꿈을 품고 살아가는 너구리와 이 모습을 아름답게 지켜보는 한 화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참깨밭에 머무는 너구리는 우주가 언제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 알아내려고 우주밀도를 관측하는 것부터 시작해 화가 아저씨의 음식을 바리바리 싸 가고, 실험 도구를 구한답시고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니기 일쑤다. 또 타임머신을 만든답시고 아저씨네 전기를 끌어가 30만 원이 넘는 요금을 내게 만드는 등 이 간 큰 너구리 녀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 대는 통에 아저씨는 롤러코스트를 탄 듯 간이 오그라드는 나날을 보낸다.
이것도 모자라 너구리는 겨울 문턱에 들어서자 제 새끼들 먹일 양식까지 당당하게 빌려 간다. 내년 여름에 물고기를 잡아서 갚겠다고 큰 소리 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화가 아저씨는 이 너구리가 밉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너구리가 가슴 속에 빛나는 별 하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너구리는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그 숱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제 존재의 근원인 우주를 연구한다. 제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은 137억 년 전 이 우주와 더불어 생겨났기에 우주의 비밀을 풀면 제 존재의 비밀도 풀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너구리의 짧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해도 풀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 꿈이 높고 멀고 아득하다 해도, 그래서 끝끝내 닿을 수 없다 해도, 꿈을 좇는 존재는 아름답다. 누구 앞에서건 당당할 수 있다. 화가 아저씨는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당당함을 사랑하기에 너구리를 내칠 수 없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기에 끝끝내 꿈의 목표를 찾지 못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속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책 속의 너구리의 삶은 무척이나 느긋하고 충만해 보인다.
240쪽, 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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