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아이 책 고르며 고민하는 이유는?
전문가들, "출판업자의 바른 인식, 부모의 지도 필요"
"아이에게 사줘도 될지 많이 고민되죠."
지난 7일 오후 6살 딸과 강남대로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육아맘 배은주(34, 영등포구) 씨는 화장, 다이어트, 헤어스타일 등의 주제를 다룬 어린이 뷰티북(Beauty Book)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배 씨는 "아이가 메이크업 등이 나오는 뷰티북을 사달라고 조른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는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다"며 "아직 이런 책에 나오는 단어는 아이가 배울 만한 것이 아닌 것 같아 관련 책은 최대한 안 사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어 배 씨는 "한창 잘 먹고 잘 커야 할 시기인데, 왜 굳이 다이어트 같은 주제의 어린이 책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아이에게 사주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4살 딸을 둔 학부모 한진희(43, 동작구) 씨는 "아이가 어렸을 때 뷰티북 종류를 많이 사달라고 졸랐는데, 당시 너무 외모에 치중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며 "요새 나오는 아이들 책을 보면 너무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 다이어트, 메이크업 노하우가 어린이 책에?
요즘 서점가에 가면 다이어트를 비롯해 메이크업, 헤어 및 피부 관리, 네일아트 등 외모 관리법을 알려주는 어린이책들이 즐비하다.
'예쁜 XX 다이어트', '블XXX 예뻐지는 XX 다이어트', 예쁜GXXX XX 다이어트', '날씬녀 XXXX', 'XXXX 뷰티 센스', '.XXXX 소녀들의 파우치 XX', 'XX와 메이크업'. 'XX XX 헤어스타일'
요즘 아이들이 즐겨 읽는다는 책의 제목이다. 이 책들은 분명 '어린이 도서'로 분류돼 있고, 표지 역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화려한 캐릭터로 꾸며져 여자아이들의 눈길을 단 번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부모나 전문가들은 이런 책들이 아이들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서초동에 위치한 한 서점 관계자는 "요즘 여자아이들이 많이 좋아한다. 부모들은 사줘야 할까 망설이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졸라서 결국 사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어린이 책들의 내용을 보면 여성들이 읽는 일반 뷰티북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살 빼는 법, 얼굴 작아지는 법, 피부 관리법은 기본. 매끈한 다리를 만드는 비법부터 계절별 메이크업 기술, 헤어기기를 이용해 스타일링하는 방법, 심지어 깔끔하게 제모하는 법까지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책들은 외모지상주의적 시선이 담긴 스토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못생긴 외모로 놀림당했던 아이가 갖은 노력으로 예뻐진 후 인기가 많아졌다거나, 살을 빼 남자 친구들의 관심을 얻는다든지, 코디네이션(의상, 화장, 액세서리, 구두 등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갖춰 꾸미는 일)을 잘 해서 '인기녀'라는 호칭을 얻는 등의 내용이 그 예다.
나아가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꾸며보자', '나랑 예뻐지지 않을래?', '함께 도전해보자' 등의 말로 아이들에게 따라 해볼 것을 부추긴다.
부모들은 이 같은 내용이 과연 아이들에게 적절한 주제인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딸을 키우는 한 엄마는 "자아가 실현되기 전부터 다이어트, 화장 등에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며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쁜 시기인데, 왜 이런 책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다른 엄마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것 같다. 하나의 유행처럼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 전문가들, "부모의 지도 함께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아동 책과 관련된 심의 기준 마련을 고려해본다거나, 출판업자의 바른 인식도 중요하지만, 부모들이 아이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 대표는 "아이들이 너무 외모지상주의적 시선을 가질까 걱정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모니터링도 하고 이슈화하기도 했지만, 현재 어떻게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솔직히 걱정만 할 뿐"이라며 "현재 이 문제에 관한 심의 기준은 없다.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 '표현의 자유다' 등 사회 전체의 관점이 통합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심의 대상에 담을 수 있는지부터 논의가 돼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을 보면 아동 책에 관한 심의 기준은 따로 없다.
이 대표는 "학부모들은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무조건 아이에게 '하지 말아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 가정교육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식 전주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적 흐름을 아이들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같다"며 "문제는 책을 보면 무조건 관리를 받으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나오는 것이다. 아이가 책의 내용을 너무 과신하지 않도록 부모가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안 보게 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되,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 '하지만 외모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이렇다'와 같이 책 내용에 대한 장단점을 함께 교육한다면 아이들의 비판의식도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진 한국가이던스 상담센터 소장은 "출판업자가 바른 인식을 갖고 책을 출판해야 할 필요가 있고, 부모들도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책을 선택해야 한다"며 "아이가 왜 이 책을 갖고 싶은지, 왜 예뻐지는데 관심이 있는지 아이의 마음을 알고 난 다음, 아이가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부모가 걱정되는 부분도 함께 얘기해주면서 아이가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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