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태, 국가는 우리를 5년간 외면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아내와 딸(태아) 잃은 안성우 씨의 이야기
[연재] 가습기살균제의 습격, 그 후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질환으로 산모 4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정부가 나서 사망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혹은 판매한 기업은 사과하지 않았고, 형사 처분도 받지 않았다. 뒤늦게 검찰에 수사에 나섰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은 지금도 투쟁 중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릴레이 칼럼으로 전한다.

2011년 2월 1일 설을 보내려 고향에 내려가려던 날 아내 현주는 부산이 아닌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병원에 간 현주는 설날도 병원에서 보냈고 결국 죽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족과 즐겁게 보내야 할 설 연휴는 병원에서 보낸 그 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습기살균제가 아내의 사망 원인이란 건 뉴스보도로 알게 됐다. 뉴스를 보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도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런 걸 왜 구매했느냐?”고.
나는 정부에서 승인한 물건을 구매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죄가 됐다. 현주가 그렇게 된 건 모두 내 탓이 돼 버렸다. 그렇게 죄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5년이다. 아마 아들 재상이와 나는 평생 가슴에 슬픔을 담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 죽음 위로할 유일한 방법, 기업?정부의 사과와 대책 마련
현주의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해기업과 정부의 사과와 책임 있는 대책뿐이다. 그러나 5년 동안 정부와 가해 기업은 요지부동이다. 정말 대단하다. 정부는 작년 12월 31일자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고를 마감했다. 검찰은 이제야 수사한다. 정말 느리다.
정부는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이 사건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정부의 제도 아래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정책을 바꾸지 않는 태도를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난해 3차 피해자 접수가 마감되기 전, 11월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찾기 캠페인과 검찰 수사 촉구 캠페인을 진행하며, 부산에서 자전거로 출발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현재까지 서울의 옥시레킷벤키저 사옥 앞에서 항의 행동을 하고 있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환경부장관 면담을 신청했지만 장관은 해외출장 중이라 만날 수가 없었다. 현재까지도 면담 신청에 대한 연락은 받지 못했다.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고 폐 질환 외에도 다양한 질환들을 호소하는데 환경부는 후속 연구와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시민이 피해를 봤지만 정부는 더 이상 진실을 밝히지 않을 모양이다. 이런 정부를 대한민국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 엄마의 부재, 아들에게 어떻게 말할까
현주의 기일이 다가오면 아들 재상이에게 같이 가자고 해야 할지, 혼자 다녀와야 할지 생각이 복잡하다. 아들이 커가면서 자기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 간다는 사실에는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재상이와 대한민국을 떠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재상이에게는 이 대한민국보다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엄마와 태어나지도 못한 동생이 죽음까지 내몰리고 본인도 폐섬유화라는 질환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피해 대책은 없다는 사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재상이에게 엄마 얘기를 꺼내봤다.
“재상아 엄마한테 절하러 갈까?”
“응, 근데 어디로가?”
“절에. 갈 거야?”
“절이 어디 있어?”
짤막한 대화를 끝내고 아이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빠졌다. 입고 갈 옷도 직접 골랐다. 가지고 갈 것도 많았다. 가지고 가서 뭐 할 거냐고 물으니 엄마한테 보여준단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다.
막상 차를 타니 재상이가 말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저런 얘기와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신났을 텐데.
절에 도착하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재상이가 물었다.
“엄마 어디 있어?”
“……엄마 하늘나라에 있는 건 알지? 재상아.”
“네, 알아요.”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어서 재상이한테는 못 온단다. 그래서 여기에서 엄마 대신 알려주는 거야.”
실망하는 표정이 보였다. 재상이는 절에 오면 엄마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아직 죽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니 어쩔 수 없나보다.
대신 집에 가서 엄마 사진 보여준다고 하니 기분이 다시 나아졌는지 이것저것 내게 물었다. 엄마한테 인사하자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엄마랑 비밀로 하기로 했단다. 이렇게 재상이는 별 탈 없이 첫 제사를 무사히 마쳤다. 재상이는 내년에 다시 오자는 질문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상이는 아직 엄마가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냥 아파서 하늘나라로 갔다고만 안다.
재상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었을 때, 사회와 정부가 엄마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았을 때, 재상이가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하고 바라본다.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Copyright ⓒ 베이비뉴스 · pr@ibabynews.com저작권자 © 베이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베이비뉴스 기사후원 ARS 1533-5155후원 안내























댓글 0
댓글을 쓰면 댓글 운영정책과 이용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봅니다. 신고된 댓글은 24시간 안에 검토합니다 · 문의 pr@ibabynews.com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