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깊은 밤 자다 깬 명재(11, 가명)가 주변을 두리번댄다. 건너편에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시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잠에 든다. 그렇게 명재는 몇 번 동안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할머니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명재를 짓누른다.
명재의 엄마 아빠는 명재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날이 많았다. 엄마 아빠가 싸운 다음 날 자고 일어나면 엄마는 종종 없어져 있곤 했다. 결국 아예 집을 나가버린 엄마 때문에 언젠가부터 명교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어렴풋이, 엄마가 바람이 나서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것이라고 어른들에게 들었다.
할머니가 명재에게 이상 증상이 있다고 알게 된 건 명재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무렵이다. 명재는 할머니와 떨어지는 게 싫다며 등교를 거부하는 날이 많았다. 명재가 분리불안, 애착장애를 겪은 지는 이미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할머니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아이의 속병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얘를 낳고는 애 엄마가 자꾸 집을 나가서 처음부터 내가 키우다시피 했어요. 언젠가부터는 애가 밤에 잠을 안 자고 자꾸 일어나서 내가 자고 있나 안 자고 있나 확인을 하더라고요. 낮에 옆집에 잠깐 가있으려고 해도 그걸 못 참고 온 동네를 돌면서 할머니를 찾아요. 나는 그게 마음이 아파서 그런건지 몰랐어요. 나를 엄마처럼 여기니까 그렇겠거니 했지요.”
명재는 학교에 가도 자리에 잘 앉아있지 못하고, 불안해하거나 산만한 행동을 보일 때가 많았다.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벽에 머리를 찧는 일도 잦았다. 또래 아이들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고 공부 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 명재를 피했다. 친구들에게 외면받으며 명재 마음에는 또 다른 상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명재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보조금을 받는 어려운 처지. 명재가 우울증, 불안증세를 심각하게 겪고 있고, ADHD증상까지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한 달 58만 원으로는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는 것만으로도 형편이 빠듯하다. 고혈압 때문에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월세가 덜 들면 명재한테 더 쓸 수 있을 텐데, 보증금이 없어서 월세 싼 집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금 사는 집보다 싼 집이 다른 동네 가면 있기는 하지만 명재가 학교에 겨우 적응을 해서 전학 시킬 수가 없으니까 이사를 갈 수가 없고요. 애도 공부하고 하려면 방이 하나 더 필요한데 계속 이렇게 살 수도 없고 걱정이에요.”
다행히 얼마 전부터 명재는 정부 지원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재에게는 학습을 위한 지원 역시 시급한 상황이다. 11살 나이에 아직 한글을 전혀 떼지 못한데다 또래에 비해 떨어지는 지능, 게다가 양육자인 할머니는 문맹이어서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습을 위한 공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비좁은 집도 해결돼야 할 큰 문제다.
명재의 장래희망은 자동차 수리공이다. 명재의 세상 속에서는 자동차 수리공이 제일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끼는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나온 명재가 부품 이곳저곳을 만지며 “자동차 튼튼하게 고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할머니는 단지 명재를 평범하게 키워내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정신과 진료를 어서 마치는 것, 명재가 쓸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할머니의 가장 큰 바람이다.
명재의 학습과 자립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강원지역본부 김주영 과장은 “형편이 곤란해 당장 해결하지 못하는 비좁은 집과 심리치료, 학습지원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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