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6년간 독박육아 하고 돌아오니...우리 보육제도에 '감격'
미국서 6년간 독박육아 하고 돌아오니...우리 보육제도에 '감격'
  • 정리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7.08.0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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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보육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보건복지부는 6월 한 달간 ‘아이와 함께 커가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보육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총 511건의 응모작 중 최우수작에 선정된 이은영(37) 씨의 수기를 소개한다. _편집자의 말


미국에서 6년 간 국제 독박 육아를 하다 온 이은영 씨. 한국 귀국 후 다양한 보육 서비스를 지원 받으면서 부담이 많이 줄었고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베이비뉴스
미국에서 6년 간 국제 독박 육아를 하다 온 이은영 씨. 한국 귀국 후 다양한 보육 서비스를 지원 받으면서 부담이 많이 줄었고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베이비뉴스


[보건복지부 보육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행복한 얼굴의 엄마


“세빈아! 동생한테 치약을 먹으라고 주면 어떡해!”


딸기 맛 어린이 치약을 쪽쪽 빨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막내는 치약을 빼앗기자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엄마에게 혼난 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아기를 안아 얼굴을 씻기러 화장실로 갔는데, 화장실 바닥 가득 풀려있는 휴지를 발견했습니다. 육아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던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양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화나고 짜증난 내 얼굴. 문득 서글퍼집니다. 내 표정이 왜 이런가… 누구보다 많은 일을 쉼 없이 해야 하고, 끝없는 인내와 고민을 떠안아야 하지만 누구도 특별하다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라는 자리. 세 번째로 아이를 키우지만, 육아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업입니다.  


그 때 ‘띠리링’ 은행 발신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백세빈 2월 가정 양육 수당 입금]  

 

연이어 막내의 가정 양육 수당 입금 알림 메시지도 뜹니다. 


'아, 월말이구나. 내가 또 한 달을 해 냈네. 나라가 수고했다고 월급도 주는데, 힘내자!' 두 아이의 가정 양육 수당 알림 문자에 제 표정이 금세 밝아집니다. 동네 엄마 한 명이 저를 보고 “그거 얼마라고 그렇게 좋아하세요?”하고 피식 웃었던 적이 있었지만, 저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수당이 너무나 뿌듯하고 좋습니다. 제가 다른 어떤 엄마들보다 우리나라의 보육 지원 제도에 감격하는 이유는 6년이란 시간을 타국에서 외롭게 아이를 키우다 돌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9년, 어린이집을 다니던 첫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유학길에 따라 나섰습니다. 한인들이 많지 않았던 미국의 작은 타운에서 지낸지 3년째 되던 해, 둘째를 출산했습니다. 산모 식사로 나온 햄버거와 차가운 콜라를 먹고 바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 그 아기가 세 돌이 될 때 까지, 단 몇 시간도 아이와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잠시라도 아기를 부탁할 가족이나 친지가 없었고, 한 달에 1000불(약 120만 원) 가까이하는 데이케어에 아이를 맡길 여유는 없던 유학생 형편이었습니다. 기저귀 값이라도 아껴보자고 2년간 천 기저귀를 사용했고, 가끔 미국 교회에서 하는 무료 어머니 교실이나 아기 학교를 찾아가며 외롭고 힘겨운 국제 독박 육아를 견디어 나갔습니다. 마침내 남편의 공부가 끝나고 100일이 된 막내 아이까지 세 아이를 데리고 귀국했을 때, 참 막막했습니다. 오랜 기간 타지에서 홀로 육아를 하며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고,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빠르고 세련되고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저와 우리 아이들은 느리고, 촌스러운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성남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주민 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던 날이 기억납니다. 담당 공무원은 친절히 다양한 보육 지원 서비스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양육 수당’에 대해 알게 되었고, 몇 달 후에는 100만 원이라는 출산 축하금도 받는다는 기쁜 소식도 들었습니다. 보육 포탈사이트 복지로, 육아지원 센터, 다자녀 카드 등등 많은 정보들이 쏟아졌고, 복지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여러 안내장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얼떨결 하기도 했습니다.

  

몇 주 뒤,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저의 귀국을 환영한다고 찾아왔습니다. 막내가 다섯 살인 후배가 저에게 한 첫마디는 “언니, 웰컴 투 복지 대한민국! 그동안 외국에서 고생 많았어요. 이제 나라 도움 좀 받아요”였습니다.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던 저를 데리고 후배는 아이사랑 놀이터로 갔습니다. 키즈 카페 같은 널찍하고 깨끗한 곳에 미끄럼틀, 주방놀이, 자동차에 볼풀까지 없는 것이 없었고, 잘 정리된 장난감들이 우리 아이들을 반겨주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세빈이는 신나게 뛰어 놀았고, 잠시 후엔 선생님이 “모이세요, 놀이 프로그램 시작하겠습니다!” 하며 큰 카드를 밀고 오셨습니다. 그 날의 활동은 ‘야채 주먹밥 만들기’였습니다. 머리 수건과 앞치마를 하고 야채 햄 주먹밥을 동글동글 만들어 먹으며 깔깔깔 웃는 아이를 보며 저는 후배에게 살짝 물었습니다.

 

“여기 진짜 다 공짜니? 이런 활동은 나중에 재료비 내는 거지?”

 

“언니! 나라에서 하는 건데 무료죠! 저 애들 키우면서 많이 지치고 우울할 때 육아지원 센터에서 큰 도움 받았어요. 부모 자녀 상담에도 참여했고, 큰 아이는 놀이 치료도 꾸준히 받았어요. 우리 애들 아이사랑 놀이터 다니다가 국공립어린이집이랑 병설 유치원 들어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도 없이 키웠어요. 이런 지원제도 아니었음 힘들었을 거예요. 언니도 나라에서 하는 거 다 이용해요. 좋은 게 많아요!”


그 날부터, 아이사랑 놀이터는 저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딱히 아이와 갈 곳이 없었던 저는 집 앞 주민 센터에 있는 영, 유아 아이 사랑 놀이터를 종종 찾아갔고, 막내가 조금 더 큰 후에는 더 넓은 시청 아이사랑 놀이터를 이용하고, 장난감 도서관 회원에도 당첨되어 무료로 장난감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발달 검사도 무료로 받았고, 10년 차이 세 아이를 키우며 교육, 보육, 훈육, 양육을 동시에 하며 쌓여가던 스트레스와 막막함을 상담사 앞에서 털어놓고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육아종합지원센터 사이트를 자주 들르며, 부모 교육이라든가, 가족 공연, 교육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또래 아기와 엄마들도 만날 수 있었고, 육아지원 센터에서 하는 유아 음악 놀이 프로그램도 신청해 막내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아이 사랑 놀이터에는“위급할 땐 119, 힘겨울 땐 129”라는 복지부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저는 그 문구가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힘들고 막막할 때 전화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라에서도 내 육아의 어려움을 알아준다는 것이 적잖은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막내 아이가 두 돌이 되던 달, 드디어 언니와 함께 국공립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2006년에 냈던 보육비의 오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으로 두 명이 보육 기관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두 아이가 안정적으로 어린이집 종일반에 적응하고 나니, 저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곳에서 근무시간을 늘려서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경력단절 되기 전 직장에 비하면 조건과 급여는 초라했지만, 오랫동안 살림과 육아만 하다가 다시 일을 갖게 된 것이, 8년 만에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다시 불리고, 내 자리와 직장 동료들이 생긴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믿을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믿고 맡기니 출근하면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습니다. 표정이 몹시 밝아졌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제 귀국한지 거의 2년이 되어갑니다. 세 아이를 안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한국 땅을 내려다보며 느꼈던 막막함이 기억납니다. 다시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대한민국은 직장맘으로 고군분투하며 첫아이를 키우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다양한 육아 지원 제도들과 복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고, 경제적이고 실질적인 도움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늘 누려왔던 사람들은 막상 그 고마움을 모를 수 있겠지만, 오랜 결핍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저는 새롭게 주어진 다양한 지원들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생명을 품고 낳아 기르는 쉽지 않은 그 과정이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진 과업으로 느껴지고, 자녀 양육이 기쁨이 일상의 고단함과 버거움에 묻혀버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내 나라에서 육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나만의 무거운 짐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필요한 이 여정에서 저는 나라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갈 길은 참 멉니다. 고단하고 힘들다 느끼는 순간들은 자주 찾아오지만, 저에게는 훗날 장성한 우리 아이들이, 기쁨과 행복으로 빛나던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좋겠다는 변치 않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양육의 기쁨에 빛나던 밝은 얼굴로 우리 자녀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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