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이 엄빠로 살아가는 이유
싱글맘이 엄빠로 살아가는 이유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02.02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나는 엄빠다, 하나만 하고 싶다"

나: “언니 오랜만이네요 잘지냈어요?”

언니: “그래 오랜만이다, 야! 너 얼굴 더 좋아졌네~”

나: “네, 언니! 오늘 큰 맘 먹고 마사지 받고 왔어요.”

언니: “좋겠다, 나도 마사지 받고 싶다. 너처럼!”

나: “언니 왜 그래요? 언니는 남편이라도 있잖아요.”

언니: “야, 나는 남편 없어도 돼~. 그냥 너처럼 마사지나 받으러 가고 싶어 남편이 있으면 뭐 하냐? 운전밖에 안해!”

나: “언니..! 저는 운전도 제가해요. 전 마사지 안 받아도 좋으니 남편이라도 있었음 좋겠어요.”

언니: “어? 그래? 미안......”

엄마와 아빠의 줄임말 엄빠. ⓒ차은아

오랜만에 커피숍에서 만난 동네 친한 언니랑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 언니는 요즘 돈이 없어서 난리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했고 난 마사지를 안 받아도 되니 남편이라도 있었음 좋겠다고 내가 더 불쌍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콘셉트를 만들어 생색과 함께 더 큰 푸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지 6개월 이후부터 모든 양육을 혼자 했다. 그래서 아이는 아빠라는 단어를 책으로 배웠고 직접 아이 입으로 아빠를 불러본 건 아이가 4살이 넘어서였던거 같다. 그래서 우리 딸은 남들처럼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같이 배우기보단 엄마, 이모라는 단어를 먼저 배웠고 다른 친구들은 아빠 엄마 그림을 같이 그린다면 우리 딸의 그림 속에는 엄마, 이모, 자기 자신 여자 3명만 등장하는 그림으로,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아빠의 빈자리가 드러나는 그런 아이였다

동네 언니들은 남편이 퇴근하면 밥을 먹고 늦게늦게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저녁을 해주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라며 짜증을 냈지만 나는 남편이 들어 오는 시간에 맞춰 맛있는 된장찌게를 만들면서 요리를 하는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저녁을 차리고 있으면 남편은 나와 내 딸을 위해 검은 봉다리에 든 귤을 덜렁덜렁 들고 오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 어차피 나는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은 마음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빠의 빈자리를 외면했고 현실에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가끔씩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부가 키울 때보다 더 힘든 부분들이 드러날 때가 많았고 그런 현실이 남들보다 2배로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가장 힘든 건 아이를 혼자 훈육하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커가면 커갈수록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를 하고 가르쳐 줘야 하는데 혼자 엄마 아빠 역할을 다 하다보니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엄마가 아이를 실컷 혼내고 나면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가 달래준다거나 아빠가 혼내면 엄마가 아빠의 마음을 대변하듯 이해시키고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나는 나혼자 나쁜 역할, 착한 역할을 다할 때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나는 다중이인가 그런 건가 싶을 정도록 훈육 후 오는 감정과 체력적인 소모는 날 지치게 했다.

훈육하는 내 모습을 보고 딸이 상처는 안받을까, 걱정하다가도 나도 내 자신이 힘들 때는 나 대신 아빠가 내 마음을 대변해서 딸 아이에게 잘 타일러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가끔은 답답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고, 혼자 아빠 엄마 역할을 다 할 수밖에 없는 이 삶의 무게가 너무도 버겁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으니깐 말이다.

또 한 번은 회사를 다닐 때 토요일은 어린이집을 운영하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가야만 했다. 사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회사에서 일과 아이 그리고 직원들의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나 스스로 눈치보게 됐고 아이가 조그만 실수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게 됐다. 함께 출근하는 토요일이 오면 출근 전 아이와 준비하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회사에 도착 후 벌어지는 일들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고 과자를 먹고 싶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심심하다라는 등 온갖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며 출근하는 길은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됐고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피곤함으로 다크써클이 허리까지 내려 오는 기분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눈은 컴퓨터 화면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모든 신경은 딸아이의 행동에 맞춰서 일을 하니 일은 일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나 스스로가 점점 예민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그냥 이대로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회사 직원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서 아이를 잘 챙겨줬지만 나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토요일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일이 끝나면 모든 에너지가 사라졌다는 핑계로 대중교통보다는 택시를 타고 집에 오게 되는데 택시를 타면 아이도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서 금방 잠이 들었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하면 잠들어 있는 딸을 안고 내 가방 하나 아이 가방 하나 아이가 먹다 남은 과자 봉다리 하나를 손가락 마디마디에 돌돌 말아서 들고 내린다.

낑낑거리면서 아이를 안고 집 앞에 도착하면 나는 미리 옆주머니에 넣은 집 키를 꺼내고 문을 열었다. 순간 균형을 잡지 못해 내 손가락 사이로 와르르 떨어지는 봉다리 속 과자들과 아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장난감들이 다리 사이에 툭툭 떨어졌다. 줍지도 못하고 꿀잠을 자느라 목이 뒤로 젖혀진 딸래미를 안고 신발도 못벗은 채 아이를 눕히면 "그래,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잘 버텻구나"라고 혼자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하다가도 가끔은 이런 현실이 비참하기도 했다.

잠든 아이 발에 있는 신발을 벗기고 문앞에 앉아서 우르르 떨어진 아이 짐과 내 짐을 보면서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 순간만은 아이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집앞에 도착할 때쯤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도착했으니깐 아이 좀 안고 들어가라고 하고 나는 아이 짐과 내 짐을 들고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현실은 모든걸 나혼자 감당하고 이겨내고 버텨내야 한다는걸 알기에 이불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딸을 보면서 그래도 아빠가 없어도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는구나라는 생각에 이것마저 감사하고 이런 우리 딸이 자랑스러웠다.

분명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부부 각자의 사랑으로 채워주는 추억이 있을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걸 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 내안의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 부어주고 있다는 것! 부모의 사랑을 다 받을 수는 없지만 그 두 사랑 못지않게 내 사랑을 뜨겁고 더 열정적이라는걸!  그래서 더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싶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아름답고 씩씩한 사랑! 내 사랑은 이렇게 건강하고 당당한 사랑이라며 내 사랑이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사랑이라는걸 우리 딸은 느끼면서 자랄 테니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용기를 낸다. 나는 싱글맘이니깐.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 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