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을 만나러 나가야겠습니다
봄꽃을 만나러 나가야겠습니다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04.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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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림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이야기

봄이 왔습니다. 오래 기다려서 더욱 반가운 봄입니다. 어느 새 따뜻해진 봄바람이 살갗을 간질입니다.

긴긴 겨울 내내 “꽃, 꽃”하며 네 살 수린이는 꽃을 찾았습니다. 봄꽃을 기다렸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눈 덮인 화단을 바라보며 봄이 오기를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는 수린이를 데리고 조화 파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활짝 핀 조화가 가득한 가게에서 수린이는 오랜만에 만난 꽃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한참을 둘러보다 맘에 쏙 드는 화분을 하나 골랐습니다. 분홍색 조화가 활짝 핀 흰색 화분을 겨우내 들고 다녔습니다. 어린이집에 갈 때도, 친구 집에 갈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수린이 손에는 흰색 화분이 있었습니다. 코끼리 코 모양 물 조리개와 플라스틱 모종삽을 가방에 넣어 다녔답니다.

꽃을 좋아하는 아이(4세). ⓒ김정은
꽃을 좋아하는 아이(4세). ⓒ김정은

초등학교 1학년 수민이를 데리려 가는 길, 초등학교 담장 사이에 빼곡하게 고개를 내민 노란 개나리가 네 살 수린이를 반깁니다. 이제 곧 벚꽃이 피겠지요. 하늘에 연분홍색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벚꽃이 만발한 날엔 벚꽃 터널 아래에서 벚꽃 비를 맞아야 합니다. 벚꽃이 한창일 땐 비가 와선 안 됩니다. 아침이면 수린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주문을 외웁니다. ‘비야 오지마라, 비야 오지마라’ 수린이는 오래도록 벚꽃 비를 맞고 싶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가 아니라면 비가 와도 좋습니다. 봄비가 내릴 땐 입이 간질간질해집니다. 풍선을 불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가 그치면 얼른 목련나무 아래로 가서 비바람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줍습니다. 꽃잎 끝을 살짝 잘라낸 후 꽃잎 사이에 입을 대고 바람을 힘껏 불어 넣으면 하얗고 볼록한 목련 꽃잎 풍선이 됩니다. 목련이 지는 건 슬프지만 목련 꽃잎 풍선을 부는 건 너무나 재밌습니다. 꽃무늬 재킷을 입고 장미 한 송이를 든 수린이가 목련 꽃잎 풍선을 불고 있습니다. 풍선을 봄바람에 날리며 인사합니다. “목련아, 내년에 또 만나!”

목련 꽃잎 풍선을 부는 아이(8세). ⓒ김정은
목련 꽃잎 풍선을 부는 아이(8세). ⓒ김정은

네 살 수린이는 꽃을 좋아합니다. 수린이의 꽃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유모차에 탄 수린이가 발을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래를 보면 어김없이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길가와 보도블록 틈 사이에 핀 작은 꽃을 수린이는 놓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수린이는 돌담 틈, 계단 층계 사이에 핀 작은 꽃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어기적어기적 수린이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바닥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틈바구니에 아주 작은 꽃이 피어 있곤 했습니다. 네 살 수린이는 길바닥에 핀 작은 꽃을 행여나 밟을까봐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이거이거...” 수린이가 꽃의 이름을 물을 때마다 저는 애를 먹었습니다. 초등학교 담장에 핀 개나리, 가로수 벚꽃, 아파트 화단에 핀 철쭉, 담벼락을 감싼 넝쿨 장미…, 저는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외 다른 꽃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린이와 두 번의 봄을 함께 보내며 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식물도감을 샀습니다. 식물도감을 펼쳐들고 낮에 본 꽃 찾기 놀이를 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꽃들이 있었다니… 한줌이 채 되지도 않는 흙더미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생명체가 피어나고 있었다니… 꽃다지, 괭이밥, 개불알풀, 제비꽃, 봄맞이꽃, 돌단풍 등 무심코 지나쳤던 봄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네 살 수린이 덕분에 생명력이 넘치는 신비로운 세상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봄(6세). ⓒ유수린
봄(6세). ⓒ유수린

수린이가 여섯 살에 그린 그림 ‘봄’입니다. 그림에는 온통 꽃과 풀이 가득합니다. 언젠가 길가나 돌 틈에서 마주쳤던 작은 꽃들이 그림을 가득 메웁니다. 겨우내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 수린이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수린이는 꽃을 밟지 않기 위해 나는 듯 사뿐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수린이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이제 꽃이 좋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입니다. 봄꽃을 만나러 나가야겠습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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