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신생아 시절에는 돌아서면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기 바빠서 눈 마주치고 음악 들려주는 것 외에 딱히 놀이라고 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그 단순한 반복이 힘겨워서 어서 빨리 제 몸도 가누고 간단한 대화도 가능한 시기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한 기다림만 이어졌다. 소위 ‘돌끝맘’이라는 시기가 오면 나도 아기와 해보고 싶은 놀이, 가보고 싶은 곳들도 참 많았다.
드디어 힘겹게 몸을 뒤집고 스스로 앉는 시기가 지나자 기어 다니는 것은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게 순식간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시기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졌다. 그리고 엄마는 ‘돌끝맘’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아기가 기어 다니고 무언가를 잡고 걸음마를 시작했으며 마침내 직립 보행이 가능해졌던 시기에는 온 집안에 가구며 살림살이들이 제 모습을 갖춘 날이 없었다.
각종 안전장치는 물론 갑자기 눈높이가 쑥 높아진 아기를 제지하기 위해 문제가 될 만한 물건들은 늘 어딘가로 높이 올려둬야만 했다. 급기야 누워서 우는 것이 전부였던 신생아 시절이 그립기만 했고 엄마는 이제 편히 화장실 갈 수 있는 시간조차 사라졌다. 급한 대로 아기의 시선을 잠깐이라도 엄마에게서 돌리기 위해 소위 ‘국민 장난감’이라 불리는 것들이 날이 밝기 무섭게 집으로 도착했고 그 즈음 아기의 언어도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라 하여 그림책도 세트로 구매했다. 몇몇 장난감은 신통방통하게도 아기의 주의를 끌어 엄마에게 잠깐의 자유를 허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아기의 경우 치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난감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집은 온통 아기 물건으로 채워져 가는데 그럴수록 아기는 더욱더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도 일찍부터 그림책을 가까이 한 보람은 있었는지 책은 유독 좋아했지만 그 또한 엄마가 옆에서 갖은 기교를 부리며 읽어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누군가 그랬지. 아기를 낳는 순간부터 육아는 끝이 없는 거라고. 정말 이것 다음은 저것, 저것 다음은? 하루 앞이 더 힘들어져만 가는 나날이었다. 그 시기 주변의 엄마 친구들은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캐릭터로 만들어진 학습 동영상을 시청한다고도 했고, 문화센터, 가정 방문 교사 등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한목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엄마가 그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고 돌아보면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기가 갑자기 꼬마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느낄 때쯤 엄마는 아이에게 생각보다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언가 좀 더 스스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장난감, 그림책 그도 아니면 미디어, 학습지까지 동원해 보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어떤 선택이 옳았느냐보다는 방법이 중요한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매체 활용을 전면 거부하는 것도 최선은 아닐 테고 다만 그런 것들을 아이에게 노출시킬 때 개개인의 여건, 아이 성향에 따른 판단과 더불어 엄마가 옆에서 얼마만큼 잘 지도해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숙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민 장난감이라는 수식어도 엄마의 부재 앞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어느 순간 장난감으로 가득해진 아이 방을 치우며 생각했다. 무턱대고 장난감만 잔뜩 사다 놓았지 정작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 차분하게 가르쳐 준 적이 있었을까? 그저 엄마의 여유를 찾기 위해 아기가 어서 빨리 가지고 놀기만 바란 건 아닐까. 발달 시기보다 너무 이른 장난감은 오히려 아기의 바른 발달을 저해한다는 연구가 있다. 또 지나치게 많은 놀잇감은 아이를 오히려 산만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고무줄 하나, 비닐봉지 하나여도 괜찮다. 엄마가 그것을 얼마만큼 활용해 아이와 끈기 있게 놀아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말이 쉽지 육아 외에도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체력도 아이디어도 늘 고갈인 상태지만. 영국의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지식을 탐구하는 아이들이지 아이들이 탐구하는 지식이 아니다.”
물고기를 낚아 주기 보다 낚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엄마가 되자. 서툴고 부족하지만 엄마의 그런 노력들이 아기에게는 그 어떤 장난감보다 가슴 깊이 남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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