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SNS에 글 하나를 올렸다. 4살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후배는 몹시 힘들어했다. 어린이집이라는 낯선 공간에 엄마 없이 혼자 남겨진 아이는 우는 것은 기본, 점심 시간에도 "우리 엄마가 올지 모른다"라며 "엄마가 왔는데 내가 없으면 엄마가 나를 못 찾지 않겠냐"며 점심 먹으러 가는 것도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엄마를 기다렸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처음 낮잠을 자고 깨어난 날에는 서러워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건 돌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2주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해 2주 동안 나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갔다. 적응기간 첫날, 엄마와 함께 등원한 아이는 조금 낯설어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니 '장난감도 많고 친구도 있는 이곳에 엄마까지 있으니 더없이 좋다'는 듯 놀았다.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다음 주가 됐다. 아이 혼자 견뎌보는 1시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놓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딱 한 시간만 잠깐 나갔다 올게. 친구들과 놀고 있어!"
아이는 슬쩍 일어서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죽겠다고 우는 아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어쩌면 '떼어내고'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정말 무거웠다. 그러곤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렇게까지 보내야 하는 건가. 도대체 뭘 위해서 이래야 하는 걸까. 내가 잘하는 걸까. 아이만큼 울고 싶었던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 그렇게 조마조마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괜찮을지,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때까지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아 원장 선생님이 업고 다른 반에 데리고 간 상태였다. 아이는 형과 누나들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간간이 어깨를 들썩이며 힘겹게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말없이 다가가 아이 등에 손을 댔다. 아이가 쳐다본다. 아...... 아이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본다. (그 후에도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 길 한복판에서 황망히 엄마가 사라져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길 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안긴다. 그 울음 안에 내포돼있는 말들이 들린다. 어디 갔었냐며, 왜 이제 왔냐며, 이게 뭐냐며.
여러 번의 통곡과 회유, 고민의 시간을 거치고 결국 아이는 '길들여져'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그때 그 얼굴은 오랫동안 나를 마음 아프게 했고, 여전히 가끔씩 기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이내 나는 미안한 엄마가 되는 것이다.
후배의 아이는 그때의 나의 아이보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이미 너무 '구.체.적.으.로' 좋아져 버린 아이. 그런 마음들을 잠시 떼어두기까지 아이는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 그렇게 아이는 커가는 걸까. 그렇게 엄마들은 단단해지는 걸까.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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