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수린이의 첫 그림책 '미술관 가는 날'
일곱 살 수린이의 첫 그림책 '미술관 가는 날'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05.15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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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림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이야기

종이 석 장을 이어 붙여 책을 만들었습니다. 여섯 페이지로 이뤄진 작은 책입니다. 일곱 살 수린이의 첫 그림책 「미술관 가는 날」입니다.

오늘은 미술관 가는 날입니다. 수린이는 수린이네 집에서, 친구는 친구네 집에서 나왔습니다.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친구와 만나 버스를 탔습니다. 수린이와 친구, 단둘이서 미술관에 갑니다. 둘이면 조용히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지만, 셋이 모이면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오른쪽에 헤드폰을 끼고 있는 아이가 친굽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아이가 수린이고요.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전시실에 수린이 그림이 가득합니다. 수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코끼리 그림이 정중앙에 있습니다. 그 옆에는 무지개 그림도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수린이의 첫 전시회 날입니다.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미술관 가는 날(7세 그림). ⓒ유수린

집 그림이 있는 면이 표지가 되도록 반으로 접으면, 수린이가 집에서 나가서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갔다가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수린이의 첫 그림책 「미술관 가는 날」 속 수린이 그림으로 가득한 전시실 장면에 언젠가는 자기만의 전시회를 열겠다는 수린이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기 전, 저의 일터는 서울시청 근처에 있었습니다. 지척에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미술관 한 바퀴, 일찍 퇴근한 날엔 또 한 바퀴, 주말 출근 후 지친 몸을 달래며 또 한 바퀴, 그렇게 미술관은 저에게 삶의 쉼터가 돼 주었습니다. 누군가 “취미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전시 관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했습니다.

두 아이를 두고 혼자서 미국에 장기출장을 갔을 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거기서도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구겐하임과 휘트니, 메트로폴리탄과 클로이스터스 등 매주 열심히 다녔습니다. 뉴욕 맨해튼 시내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때 만난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의 작품은 낯설고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꼭 다시 보고 싶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면서 미술관 나들이는 그림의 떡이 되었습니다. 세 살 수린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일곱 살 수민이를 걸려서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갔던 날을, 세 사람 모두 지옥 체험을 했던 날로 기억합니다. 네 살 수린이와 여덟 살 수민이를 모두 걸려 미술관에 갔던 날엔 다리가 아프다고 보채는 수린이를 엄마가 한번 언니가 한번 번갈아 업어가며 작품 감상을 했습니다. 다섯 살 수린이가 미술관 벤치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전시 관람은 못하고 수린이가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다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다리 아프고 졸리기만 한 전시 관람을 아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고상한 취미 때문에 아이들 고생만 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곱 살 수린이의 그림책 「미술관 가는 날」에서 수린이는 그림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엄마, 저도 미술관 나들이 좋아요. 전시장 가득 제 그림을 걸고 싶어요”라고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아이도 좋아한다니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하여 두 아이와 함께 하는 미술관 나들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미술관행 버스를 탔습니다.

수린이와 엄마가 좋아하는 미술관 나들이 코스를 소개합니다. 

⓵ 서울시립미술관을 관람하고 근처에서 일하시는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⓶ 덕수궁미술관을 관람하고 서울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실컷 본다.
⓷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하고 삼청동과 인사동을 한 바퀴 돈다.
 
세 가지 코스 모두 좋습니다. 수린이가 자라서 다리에 힘이 더 생기면 그동안 멀어서 가지 못한 미술관에도 가 볼 거예요.      

일곱 살 수린이가 그림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림 제목은 ‘잭슨 폴록 아저씨 그림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어요’ 랍니다.

미술 교습소에서 잭슨 폴록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답니다. 바닥에 큰 종이를 깔아 놓고 물감을 뿌리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 아저씨의 작업 방식이 인상 깊었나봅니다. “그림 그리는 건 춤을 추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답니다. 수린이는 그림으로 잭슨 폴록 아저씨의 전시장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림 제목처럼 잭슨 폴록 아저씨의 그림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습니다.

잭슨 폴록 아저씨 그림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어요(7세 그림). ⓒ유수린
잭슨 폴록 아저씨 그림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어요(7세 그림). ⓒ유수린

잭슨 폴록 아저씨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먼저 바닥에 큰 종이 한 장을 깝니다. 큰 종이 주변에 두꺼운 종이로 만든 가드를 세웁니다. 구슬을 여러 개 씻어서 물감을 짜 놓은 그릇에 담습니다. 물감이 잔뜩 묻은 구슬을 큰 종이에다 굴립니다. 가드가 있어서 구슬이 종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 번 구슬과 물감을 바꿔가며 굴리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큰 종이를 잘라 네 개의 작은 그림으로 만듭니다. 새 종이에 네 개의 작은 그림을 붙여서 잭슨 폴록 아저씨의 전시장을 완성했습니다. 엄마와 언니, 수린이가 그림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림에서 수린이는 엄마와 언니에게 잭슨 폴록 아저씨의 그림을 소개합니다. “그림 그리는 건 춤추는 일이야.” 수린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언젠가 뉴욕의 미술관에서 보았던 감동이 다시 떠오릅니다.

열 살 수린이는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합니다. 이제는 엄마보다 더 열심히 전시장을 돌아다닙니다. 엄마가 다리가 아파서 조금 쉬자고 해도 어림없습니다. 나를 위한 공간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미술관이 수린이에게 삶의 쉼터가 돼 주면 좋겠습니다. 안젠가 자신의 전시회를 열겠다는 수린이의 꿈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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