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뭐라고 했지? 불의를 보면!”
“참아야 한다!”
작은 아이의 대답에 나오는 순간 나와 큰 아이는 함께 까르르 웃었다.
작은 아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엄마가 늘 전전긍긍이었으니까, 아이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안산 주민이다. 안산에서도 우리 동네는 ‘엄마의 마음으로’라는 타이틀을 걸고 세월호 아이들을 ‘집 안 강아지’에 비유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바른미래당의 이혜경이 시의원으로 출마한 곳이다.
그 날은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이혜경 선거운동원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던 것.
“저기요. 이 이혜경이 그, 아이들을 강아지에 빗댄 그 이혜경 맞죠?”
“네~ 그런데 그건 오해시구요. 저희도 언론에 나와서 보긴 했는데…”
“아니, 무슨 오해예요. 공보물에 떡하니 나와있던데, 사람이 해야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지. 그러고도 ‘엄마’ 이름 달고 당선되겠다고 할 수 있어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흥분하신 것 같은데, 그런게 아니고요…”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후보 전화번호 줘봐요. 직접 전화 좀 해보게”
그러니 앳돼 보이는 선거운동원 하나가 냉큼 “010-”이러면서 번호를 부른다.
“아니, 당신 번호 말고, 후보 번호요”하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딸이라서…저희 엄마 번호라 제가 알고 있어서 그래요”
다시 한 번 쳐다봤다. 그러고보니 운동복 등판에 ‘딸’이라고 큰 글씨로 적혀있다. 얼굴을 찬찬히 쳐다봤다. 대학생쯤 되었을까? 평범한 20대 청년인 것 같은데, 갑자기 애잔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든다. 저 아이는 자기 엄마 때문에 나 말고 또 여기저기서 얼마나 욕을 먹었을까.
“엄마한테 가서 전해요. 더 욕 들어먹기 전에 그만 두시라고.”
그렇게 말하고 길을 건너려는데 아까 전까지 옆에 있었던 아이들이 없다. 얘네들이 어디갔지? 둘러보니 진즉에 길 건너편에 가 서있다.
“엄마 잘했지? 저런 사람들은 창피를 줘야 돼!” 하니, 작은아이가 나를 잡아 끌며 “엄마가 더 챙피해”란다. 이런. 그런데 큰 아이가 이런다. “엄마, 저기 저 사람 알아?” 아이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우리 동네 출마한 정의당 후보가 명함을 돌리고 있다.
“저 아저씨가 그러는데, 엄마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민주노총에서 잘 싸우기로.” 이런.
옆의 작은 아이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묻는다. “엄마 유명해?”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졸지에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작은 아이는 가끔 “엄마는 대통령에 나갈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시의원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이라니. 아마 초등학생 때 “커서 뭐가 될래?” 물으면 선생님, 경찰관, 대통령… 이었던 그런 거겠지. 아이들에게 ‘정치인=대통령’일테니까. 그런데 네 꿈도 아니고, 왜 나보고 대통령이 되라는 건지.
어찌됐든 우리 아이들은 최소한 진보정당 당원인 엄마 덕에 정치를 낯설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반면 우리사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이 ‘정치’의 전부인 줄 알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 ‘정치인’은 박근혜처럼 나쁜 사람이라고 아는 아이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에 간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활정치, 서민정치, 마을정치를 알려줄까.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교육과 보육, 환경문제 등.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데 어느 하나 ‘정치’의 영역이 아닌 것이 없지만 정작 당사자인 엄마와 아이,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의 공간이 없는 배제의 정치, 그들만의 정치를 어떻게 ‘우리들의 정치’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일인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 민중당, 정의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의 후보, 여성후보 등의 선전과 분투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6월 13일은 지방선거일이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 여성후보들의 엄마와 아이, 청년과 청소년의 직접정치를 얼마만큼 실현할지, 주목해 보자. 그 첫 출발은 아이와 손잡고 투표장으로 가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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