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쁜 부모일까?
우리는 나쁜 부모일까?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8.06.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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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아기들 어린이집에 맡기고 남편과 단 둘이 보낸 날
핑계 많은 부모와 함께 산지 어언 300일된 쌍둥이들, 이제 양치도 할 줄 안다. ⓒ전아름
핑계 많은 부모와 함께 산지 어언 300일된 쌍둥이들, 이제 양치도 할 줄 안다. ⓒ전아름

남편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당직근무를 한다. 주말에 일 하면 평일에 하루 대휴가 있다. 그동안 남편은 그 대휴를 감기를 자주 앓는 아기들을 데리고 소아과에 가는데 쓰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런데 몇 주 전 완벽한 ‘육아휴가’를 쓸 수 있는 날이 있었다. 감기를 이겨낸 아기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한 것이다.

일찌감치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집에 온 우리부부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침으로 (천천히, 조용하게) 빵과 우유를 먹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을 꺼내 나는 일을 하고, 남편은 게임을 했다. 그 뒤 라디오를 들으며 느긋하게 샤워를 했다. 청소와 설거지를 해놓고 우리는 손을 잡고 집 앞 식당에 가 역시 천천히, 느긋하고, 조용한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었다. 그동안은 각자 아기를 안고 움직이느라, 유모차를 미느라, 기저귀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외출을 해도 손잡을 새가 없었다. 오랜만에 남편 손을 잡고 걸으니 어쩐지 낯설었다. 우리가 애정하는 동네 커피숍에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됐다. 어린이집에 애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엉덩이가 어찌나 무겁던지.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맡겨 놓은 6시간이 6분처럼 느껴졌다.

아기들을 집에 데려오자마자 다시 전쟁 같은 육아가 시작됐다. 이유식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돌아다니며 저지레하는 아기들 잡으러 다녔다. 졸리다 잠투정을 부리면서도 엄마아빠와 같이 있는 것이 좋은지 기를 쓰고 안자려고 참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자고싶지 않은 쌍둥이들과 어떻게든 재우려는 부모의 기싸움. 아기들은 결국 아빠의 마약베개같은 둥근 배 위에서 캥거루 자세로 잠이 들었다. 잠시의 소란이 끝나고 나니 나는 남편과 단둘이 보낸 이 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들 없이 남편과 보낸 6시간이 정말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곧 “아기들이 없어서 편하고 좋았다니, 나는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에 또 휩싸여, 잠시 괴로웠다.

짧은 연애기간과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처리‘한 결혼, 주말부부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임신기간과, 전혀 상상도 못한 쌍둥이육아의 고됨에 우울과 짜증이 반복됐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앞서 말했듯 우리에겐 연애기간이 충분하지 못했고, 달달한 신혼기간도 거의 없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결합한 동지처럼 우리는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육아전투에 임했다. 아기들을 낳고 10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여유로운 휴일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 정도 ’꿀 빠는‘ 육아휴가를 쓰고 나니 나나 남편이나 말하지 않았지만 육아와 일상을 버티는 힘이 리프레시 되는 것을 느꼈다. 아기들과 조금 더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게 되고, 반복되는 일상이 덜 지루하게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아기들에게 괜히 미안하지만, 나의 병적인 ’습관성미안함증후군‘을 버리고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이런 날들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인생은 길고, 육아는 끝없이 이어진 장거리마라톤. 가끔 이렇게 쉬어가는 날이 있어야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인생과 육아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육아하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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