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요새 눈만 뜨면 이미 출근하고 없는 아빠부터 찾기 시작한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도 한달음에 달려온 엄마는 본체만체하고 “아빠 아빠”를 외치는 통에 식은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되는 것 많고 야단부터 치는 엄마와 달리 늘 웃으며 놀아 주고 원하는 것은 대부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아빠는 아이에게 최고의 친구일 수밖에. 한참 호기심 많고 질문도 부쩍 늘어난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남자아이라고 누가 주입시킨 것도 아닌데 유독 파란색을 좋아하고 온통 자동차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부쩍 늘어난 고집이며 세 살 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힘은 얼마나 센지 엄마가 놀아주기에는 이제 정말 벅차구나 싶어 또다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하루하루! 내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남편의 퇴근 시간이 되어 버렸다.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집에 와서 또 다시 가사와 육아를 도와주려면 분명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한숨 돌릴 새 없는 엄마에게는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양육자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마움 대신 자꾸 서운함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여자와 남자가 결혼을 해서 함께 맞추고 살아간다는 일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부만 있을 때는 어른 대 어른으로 대화와 타협이 비교적 가능했고 해결하지 못할 정도의 문제는 없었지 싶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많은 부분들이 충돌했다. 이것 역시 어찌 보면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거나,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는 좀 더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들 때까지 잠깐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가 뭘 요구해도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고 마냥 예뻐해 주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혼을 내든 안아 주든 자녀 교육에 있어 ‘일관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데 엄마는 분명 안 된다고 정해 놓은 규칙을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깨어버리면 다시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남편은 아는 걸까? 이런 부분에 대해 남편과 오랜 시간 이야기해 왔고 그럴 때면 같이 잘해보겠다고 수긍도 했지만 아이만 보면 금새 다시 바보가 되어 버리는 아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 아빠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딸 바보’ ‘아들 바보’ 들이 되어 아내의 말에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들 한다. 이쯤 되면 정말 여자의 뇌, 남자의 뇌는 태생부터가 달라 평생 조율하기 힘든 것은 아닌지 앞으로 함께 아이를 키워나갈 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분명 아이에게 있어 엄마의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지만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참 말을 배우는 시기인 우리 아이도 내가 열 번 말해 준 단어보다 아빠가 한두 번 가르쳐준 단어를 더 빨리 외운다. 또 공 던지기, 야외활동 등 몸으로 놀아주는 일은 엄마가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태교를 할 때도 엄마 목소리보다 아빠 목소리가 아이에게 훨씬 더 잘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는 더 부탁하고 싶다. 나라고 나쁜 엄마 야단치는 엄마 역할을 하고 싶겠는가! 엄마가 아빠에게 바라는 건 엄마가 하는 모든 방식을 무조건 똑같이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에게 있어 우리가 서로 합의된 일정 부분들에 한해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아이를 훈육하는 순간만이라도 아이보다 엄마의 이야기에 더 공감해 달라. 열 번 잘하고도 한 가지가 모자라서 아내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슈퍼맨 아빠들아, 엄마가 아이 아빠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놀이, 화려한 리액션이 아니라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엄마의 육아관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동참해 주는 것이다. 육아는 어느 한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니까.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