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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짜증 난다”라고 말하는 아이

[엄마가 한번 해봤어] '커뮤니케이션 저해 언어' 안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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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5학년 진이(가명)가 “짜증 난다”는 말을 종종, 자주, 더러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4살 터울의 동생에게도. 그 말이 듣기 불편했다. 왜 불편할까, 생각해보니 진이가 “짜증 난다”고 말하는 순간, 동생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언니, 나빠.” 동생이 할 수 있는 반격은 고작 이런 수준.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쿵쿵 내려 앉았다.

그무렵이었다. ‘짜증 난다는 말 대신 쓸 수 있는 적당한 표현이 없을까. 왜 짜증 난다고 말하는 순간, 뭔가 마음이 상처받는 느낌이 들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 소리를 듣게 될 때마다 내 마음이 힘든 것은 물론, 상처받은 둘째의 표정도 문득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드는 생각, ‘짜증난다는 말대신 힘들다’고 말하면 어떨까? 말하고 보니, 좋은데?'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 그 무렵, 동생이 자기 물건을 만지고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아 짜증 난다는 진이에게 말했다.  

“진아, 엄마는 ‘짜증 난다’는 말이 좀 불편해."

“응? 왜?"

"짜증 난다는 말은 뭔가 상대방과 벽이 생기는 기분이 들어. 상대방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듣는 나는 몹시 불편하고, 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좀 힘들더라구. 그래서 짜증 난다는 말 대신, 힘들다는 말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실제 짜증 나는 상황은 마음이 좀 힘든 상황이잖아.”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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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러면 어떨까?”

“음... 좋아.”

우연히 보게 된 책 「친하다는 이유만으로」(간노 히토시 지음)에 나랑 같은 고민을 한 저자 이야기가 나와 놀랍고 반가웠다. 저자의 딸이 3, 4학년 됐을 무렵 “빡쳐, 열받아, 짜증 나” 등의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는 것. 저자는 그런 아이의 말을 ‘커뮤니케이션 저해 언어’라고 정의하며 특별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썼다. 내가 진이에게 “짜증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바로 그 지점이 있다.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 그 단절감을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저해 언어’라고 '고급지게' 말했다. 내 느낌과 꼭 같은 상황을 이렇게 멋진 표현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다니... 무릎을 쳤다.

간노 히토시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간노 히토시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위즈덤하우스

저자는 말한다. “10대 청소년들은 한창 타자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상황에 따라 상대에게 어떠한 거리 감각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익혀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저해 언어는 이질적인 타자와 오롯이 교류하는 것을 회피하는 도구가 됩니다”라고. 이른바 ‘도피 아이템’으로, 이런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타자의 이질성을 향해 처음부터 등을 돌리는 신체성을 획득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저자의 말을 좀더 옮겨 보자.

“짜증 난다는 말은, 조금이라도 이질적으로 느껴지거나 불편한 느낌이 들 때 곧장 불쾌감을 표현함으로써 이질적인 것과 부딪히려는 의욕을 그 자리에서 차단해 버리는 언어 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타자에 대한 공격의 언어로도 쓰입니다.”

“보통 ‘싫다’고 말할 때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근거를 대야 하지만, 짜증 나는 한마디로 끝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극단적인 거부를 즉각 표명할 수 있는 안이하면서도 편리한 언어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저해 언어는 타자와 맺은 관계 안에 내재한 이질성을 받아들이며 익숙해지는 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결국 짜증나라든지, 열 받아 같은 말을 입에 담자마자 이질성을 받아들인 형태의 친밀감이나, 친근함을 만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되어버립니다.”

“짜증 난다”는 말대신 “마음이 힘들다”는 표현을 생각하고 딸에게 권한 것은 잘한 것 같다. 그걸 이 책을 통해 확인받은 기분이다. 나부터 바른 말을 쓰고 딸에게도 꾸준히 권해야겠다. 소통을 잘 하고 싶은 건 누구나 원하는 것일 테니까. 「친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왜 모두와 친하게 지내야 하지?’라는 고민에 빠진 딸에게 도움을 주고자 쓴 책이라는데, 저자는 2016년 사망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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