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초상화, 엄마와 '정은 씨' 사이에서
엄마의 초상화, 엄마와 '정은 씨' 사이에서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07.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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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림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이야기

수린이가 여섯 살 때 그린 그림, ‘엄마는 예쁘다’입니다. 꽃무늬가 가득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쪽은 분홍색, 다른 쪽은 연두색, 양쪽 신발 색깔이 다릅니다. 반지와 팔찌를 끼고 와인색 매니큐어를 칠했습니다. 보석이 박힌 작은 가방을 들고 있습니다. 

엄마는 예쁘다(6세 그림). ©유수린
엄마는 예쁘다(6세 그림). ©유수린

현실의 제 모습은 ‘엄마는 예쁘다’와 정반대입니다. 극심한 민감성 피부 때문에 화장을 못합니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풀 메이크업을 받았던 날, 올록볼록한 종기가 얼굴을 뒤덮는 바람에 피부과로 달려가 온 얼굴에 주사 열여덟 대를 한꺼번에 맞은 적이 있습니다. 서너 번 같은 일이 생기자 아예 화장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민낯으로 다니기 민망해서 액세서리를 해볼까 싶었지만, 민감한 피부는 반지, 팔찌, 목걸이 등 금속에도 과민 반응을 보였습니다. 목 주변과 팔목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손톱으로 벅벅 긁은 것처럼 보여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옷을 예쁘게 입으면 어떨까 기대했지만, 민감한 피부는 합성 섬유에도 어김없이 반응했습니다. 순면 100%만 허락했기에, 민낯에 면 티셔츠가 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면 티셔츠에 하이힐과 토트백이 어울릴 리 없으므로 늘 운동화와 배낭을 장착하고 다녔습니다. 

“엄마가 이랬으면 좋겠어?”

여섯 살 수린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치원 공개수업에서 환한 얼굴로 엄마를 맞이하는 수린이었지만, 어쩌면 속마음은 민낯에 티셔츠 차림의 엄마가 부끄러웠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예쁘게 못 하는데, 수린이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여섯 살 수린이는 두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뻐요!”

엄마(나비를 그리고 엄마라 제목 붙임)(6세 그림). ©유수린
엄마(나비를 그리고 엄마라 제목 붙임)(6세 그림). ©유수린

“엄마, 이 그림도 ‘엄마’예요. 알고 있었어요?”

열 살 수린이가 말했습니다. ‘나비’를 그려놓고 ‘엄마’라니 영문을 알 수 없어 다시 물었습니다.

“‘나비’잖아. 나비가 예뻐서 그린 거 아니었어?”

여섯 살 수린이가 그린 그림의 진짜 제목을 오늘에야 알게 됐습니다. 스케치북을 꽉 채운 노랑나비 그림 제목이 ‘엄마’랍니다. 유치원에서 처음 배운 노래가 ‘나비야, 나비야’였고,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도 ‘나비야, 나비야’부터 연주했답니다. 오카리나를 불 때도 ‘나비야, 나비야’부터 시작했답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수린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나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했답니다. 어느 날, 곤충도감에서 나비 사진을 보고서 너무 예뻐서 한눈에 반했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진짜 나비를 보게 됐는데, 날개 전체를 있는 힘껏 온전히 흔들어서 팔랑팔랑 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답니다.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엄마와 닮았다나요? 엄마도 언젠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답니다. 요즘 날이 더워 지쳐서일까요? 여섯 살 수린이가 그린 나비 그림의 진실을 듣고 나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열 살 수린이는 여전히 엄마를 그리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여섯 살에 그린 ‘엄마는 예쁘다’와 ‘엄마(나비를 그리고 엄마라 제목 붙임)’와는 다른, 진짜 엄마 모습을 그리고 싶답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발견한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에서 해답을 찾았답니다.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를 든 수린(10세). ©김정은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를 든 수린(10세). ©김정은

「엄마의 초상화」 속 엄마 초상화는 두 종류입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족을 위해 사는 사람, 작가 눈에 비친 엄마 모습을 왼쪽 페이지에, 엄마의 가슴 속에 감춰진, ‘미영 씨’의 진짜 모습을 오른쪽 페이지에 배치했습니다. 책장을 펼쳐 양쪽 페이지를 동시에 보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난 누구, 지금 여긴 어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엄마, 이 책 최고예요!”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이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음... 엄마는 지금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있어요. 엄마가 꼭 오른쪽 그림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열 살 수린이가 그릴 제 모습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수린이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습니다. ‘정은 씨’가 되어야겠습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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