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학 기간은 다른 말로 가정학습 기간이라고도 한다. 모처럼 엄마 아빠가 아이와 온종일 함께 보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막상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아이의 방학 기간에 맞춰 아빠도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는 집들은 그나마 빠르게 지나갔을 법한 시간이지만 우리 가족은 휴가 일정이 달라 어떻게든 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SNS를 통해 주변 엄마들이 어디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지 정보를 얻어 아이들한테 인기가 좋다는 곳을 예약해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체력은 나날이 대단해져서 반나절 흥미로운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또 다시 엄마와 남겨지는 시간은 길 수밖에 없었다.
해서 집이 엉망이 되는 사태를 각오하고라도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 요리 놀이를 하는가 하면,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넣어주며 원 없이 물놀이를 하게 해주기도 했다. 일부러 방학 때 사주려고 아껴둔 책과 장난감도 구입했으며, 특별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청 시간도 늘려줬다.
엄마와 함께 하는 새로운 놀이에 아이의 첫 반응은 늘 감탄사 연발! 그러나 아이의 집중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또 다른 것, 더 새로운 것을 찾는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금방 땀으로 젖는 티셔츠를 갈아입으며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라는 어느 광고의 문구가 뼈저리게 와닿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해 엄마에게 "좋아", "사랑해"를 남발하니 그저 웃을 수밖에.
◇ 아이가 원한 것은 새 장난감이나 멋진 키즈카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내 놀아줬는데도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 품이 그리웠는지 쏙 하고 달려가 버리는 아이를 보면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들 녀석이라 엄마가 놀아주는 것이 제 맘 같지 않았나 보다 싶었지만, 유독 아빠를 따르는 아이가 내심 괘씸하기도 하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마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부자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행복하고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는 알쏭달쏭한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아빠는 나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아이가 더 좋아하고 따르는 거다 생각하고 둘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낮에 나랑 놀 때는 시큰둥했던 부엌 놀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렇게 재미있게 하더라! 소꿉놀이에 음식 모형 장난감을 끓이고 볶는 시늉을 해 아빠에게 갖다주고 먹이는 것을 수없이 반복하는 네버엔딩 놀이.
문득 내 시선을 느낀 아빠가 “엄마한테도 좀 줄까?” 했더니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순간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엄마 아빠. 그리고 신랑이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는? 엄마는 왜 안 줘?” 그러자 아직 말이 서툰 아이지만 본인이 아는 단어와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대답한다.
“엄마는 먹지 않아. 엄마는 맘마를 먹지 않았어.”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놀아줬다고 생각한 모든 것은 또 나의 기준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새 장난감, 물놀이, 멋진 키즈카페에 가고 싶다고 아이는 말한 적이 없다. 아이가 원한 것은 늘 함께 놀아주는 엄마의 반응.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자동차 놀이를 할 때도 동물 책을 읽을 때도 “여기. 여기 앉아.”라고 자꾸 장소까지 지정하며 나를 붙잡던 아이. 나는 왜 그 순간을 놓치고 자꾸 엉뚱한 다음 계획을 세우느라 혼자 바빴던 걸까.
공감과 반응은 최고의 대화법이라고 한다. 아이와 놀아줄 때만큼은 차라리 엄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자. 같이 아이였던 시절로 돌아가 네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더 많이 공감해주는 친구가 되자.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된 엄마의 가정학습 기간이었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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