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의 무관심… 도시는 더욱 뜨거워진다
20년간의 무관심… 도시는 더욱 뜨거워진다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08.28 08:4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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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약한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휴가지로 찾은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섰지만 사면이 뚫린 세병관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휴가지로 찾은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섰지만 사면이 뚫린 세병관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백운희

섭씨 41도. 눈을 비비고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봐도 분명 우리 동네 현재기온을 가리키는 숫자다. 수치는 이후 39, 38 등으로 바뀌었지만 살갗에 닿는 열감의 정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111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을 증명하듯 땡볕더위와 열대야가 밤낮으로 기승을 부린 한 달 여. 약한 존재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했던 계절과 날씨를 경험하며 아이와 함께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글은 ‘날씨’에서 시작했지만 날씨에 그치지 않는 반성의 기록이자, 저마다의 ‘환경 감수성’ 촉수를 세워보자는 선동이다.

◇ 누구나 기후약자가 될 수 있다

한낮, 아주 잠깐이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뿐인가.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입맛이 없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귀찮았다. 딸과 함께 거실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것’이다. 이후 “에어컨 밖은 위험해”를 되뇌며 방학을 맞은 아이와 자발적 감금 생활에 돌입했다. 시원한 집이 있어 가능했다.

답답해 하는 아이를 달랠 겸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아이에게 말을 꺼냈다.

“이 시간에도 야외에서 일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더위를 견뎌야 하는 분들이 있어. 매일같이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마트 배송기사님이나 택배기사님도 있지만 아까 신문에서 봤던 건설현장 노동자, 쪽방촌 주민, 단식 투쟁을 이어가는 노스님,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분들처럼 말이야.”라고 직간접적으로 접해왔던 이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렇잖아요”. 부모님이 있었다. 빨갛게 물든 고추밭에서 땡볕에도 허리를 굽히고 있을 분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반갑지만 지친 기색이 전해졌다. 한여름에도 해가 지면 서늘했던 산 아래 집이 이번 여름에는 ‘찜통’으로 변했다는 소식도 함께.

걱정스런 마음에 한사코 마다하는 부모님께 에어컨을 장만해드렸다. 대기수요가 몰려 설치까지는 10일이나 걸린다지만 이제라도 부모님 댁에는 에어컨이 생겼고 자식들은 걱정을 조금 덜었다. 폭염은 칠순을 넘긴 아버지가 인생 최초로 에어컨과 함께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통계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냉방시설을 구비하지 못한 도시 저소득층과 땀 배출을 통한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지는 고령층은 기후약자가 된다. 두 경우에 모두 포함되는 이들에게는 폭염은 치명적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 질환자(열사병 등 무더위로 발생하는 급성질환)가 역대 최대인 4300명을 넘어섰고 그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30퍼센트를 웃돌았다. 예년에는 길가나 논밭, 운동장처럼 야외에서 주로 온열질환자가 발생했지만 올해는 실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온열질환에 노출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기후약자가 늘어났다는 증거다.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길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지문이 붙었다. 경비 초소에 에어컨 설치여부를 묻는 주민 설문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껏 경비실에 에어컨이 없었다는 것과 그걸 모르고 지낸 스스로에게 놀라는 동시에 이제라도 설치가 돼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폭염처럼 기후변화에 맞서 사회구성원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법은 ‘에어컨’을 다는 것일까? 지난날 우리 가족의 도전과 실패가 떠올랐다.

◇ 에어컨 없는 삶을 포기하다

결혼을 하고 10년 동안 우리 집에 냉방 기구는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아이를 낳고 한 대 더 장만해 선풍기 두 대로 여름을 났다. 집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찬물샤워를 함께하면 그런대로 버틸 만했다.

에어컨을 사지 않은 것은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내게 여름은 어린 시절부터 종일 물놀이하고, 살갗이 벗겨지도록 볕을 쬐고 다녀도 신나고 짧기만 한 한철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애초에 더위가 힘들어 거금을 주고 냉방기계를 산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냉방을 위해 사용되는 냉매제가 환경을 해치는 동시에 지구를 더욱 덥힌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데, 너희만 유난이다”라고 할 때면 “나 하나라도 보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에어컨을 켜고 문을 닫으면 그 속은 쾌적할지라도 그렇게 하나둘 자기들만의 ‘닫힌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잠시 더위를 피하고자 에어컨을 쓰는 것은 지구를 위해서도, 네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누고자 노력했다. 아이도 거리에서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접한 이후 나름대로 이해하는 듯했다. 

고비가 찾아온 것은 2년 전이었다. 아파트 저층에는 바람 한 점 들지 않고, 습기만 가득했다.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찬물로 몸을 씻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땀이 흘러내렸다.

자다가 깨 몸을 씻은 뒤 잠을 청하기가 부지기수였고, 결국 뜬 눈으로 밤을 보낸 뒤 새벽녘 동네 산책을 나서기도 했다. 시원한 곳을 찾기 위한 소비가 뒤따랐고, 살도 덤으로 따라왔다. 무겁고 고단한 여름이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견디기 힘들었다. 

여름은 점점 길어졌다. 열섬현상으로 달아오른 도심,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단지에 살면서 자연 바람을 기대하는 것부터 맞지 않다는 뉘우침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작년 여름 에어컨을 샀다. 이후 끈적임 없는 생활을 누리며 삶의 질이 바뀐다는 얘기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파트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 밤낮 없이 돌아가는 실외기를 바라볼 때면 죄의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남은 할부기간과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과 함께.

전기요금폭탄을 우려하며 누진제를 없애야 한다든가,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다며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염 속 도심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도심 숲이나 공원은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폭염 속 도심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도심 숲이나 공원은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그러나 해야 하는 것

전력 공급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개문냉방’ 매장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냉방 중에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매장으로 에너지 손실과 낭비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이런 행태의 영업을 벌이는 매장은 대부분 규모도 크다.

어느 해에는 전력공급량이 부족하다며 공공기관의 냉방온도를 규제하고, 개문냉방 업소에 대해 지도점검을 벌인다고 떠들썩했다. 하지만 어느새 잠잠하다. 폭염으로 늘어난 전력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움직임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에 앞서 개문냉방 영업부터 규제하라고 권하고 싶다. 

도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나무를 많이 심는 일이다. 도심 숲이나 공원은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나무가 산소와 수증기를 내뿜으며 열을 흡수하면서 주변지역보다 온도가 1~5도 정도 낮아지고, 숲 주변 50~80m까지도 시원함이 느껴진다. 여름 한낮에는 평균 기온을 3~7도 낮춘다. 습도도 9~23% 상승시키는 것이 도시 숲이다.

올 여름 심심치 않게 ‘공세권’이라는 단어를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른바 주거지역 근처에 숲이나 공원이 형성된 곳을 일컫는다. ‘역세권’, ‘놀세권’에 이어 공세권이라니. 여기서 공세권이 숲과 공원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용어라면 반갑겠지만 실상은 부동산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 장치로서 의미가 더 커 보이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숲과 공원은 도시문제 해결에도 상당히 기여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대기오염물질로부터 공기를 정화한다. 자연 놀이터이자 휴식의 공간도 된다.

그런 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단다. 오는 2020년 7월부터 서울시의 경우 도시공원 83%(116개 공원, 총 면적 95.6㎢)가 도시공원일몰제 적용 대상이 된다.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지정 효력이 사라지면서 공원도 해제대상이 됐고 그중 42.1%가 사유지라고 한다.

해당 부지를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사들이지 않으면 그 땅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거나 개발돼도 막을 방법이 없다. 지가 상승에 따른 재원확보의 어려움과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아직 성과는 미흡하다. 20년간 무관심이 빚은 결과다. 이대로 방치하면 도심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 여름은 다시 온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란다

장장 26일간 이어진 열대야를 치르고서야 문 사이로 드는 바람과 함께 잠들었다. 바람결이 서늘한 걸 보니 여름이 가려나보다. 절기로 보면 입추 지나 밤에 찬바람 불고, 말복 지나 밤낮 기온차가 난다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절기’에 감탄한다. 그리고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수천 년이 지난 절기가 아직도 맞아떨어진다니, 지금의 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닌 것만 같아서다.

“소쩍새 울면 참깨 심고, 꾀꼬리 울면 고추 모 심고, 뻐꾸기 울면 콩 심고, 보리 베고, 피 뽑고 그러다 보면 여름 가고, 가을 오고, 겨울 오고” - 「모두 깜언」(김중미, 창비, 2015년) 중

딸이 읽고 있던 동화책 속 글처럼 자연스레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서울이 세계 최대 탄소배출도시 1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지구는 더워지고 기후는 변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힘든 사회취약계층은 곧 기후약자이다. 그리고 기후약자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도, 누구라도 해당될 수 있다.

계절은 가도 던져진 과제는 사라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지금 있는 숲과 공원을 지켜내고, 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하기 전에 새고 있는 에너지부터 잡으려고 행동하며, 기후변화에 따른 생존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사회가 함께 풀어가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내년 여름, 우리는 조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물론 지구를 나눠 쓰는 뭇 생명들 앞에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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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n**** 2018-09-10 10:46:14
아이있는 집은 에어컨 없이는 못버텨요...

db**** 2018-09-10 09:29:35
날씨 지구온나화의 영향으로 힘들  날씨들이 있지만  환경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을 모두가 함께  해주어야 할때이죠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 떠나 보면 아이와  좋은 시간도 되니 좋지요

so**** 2018-09-05 11:45:55
에어컨을 틀면서도 참... 지구에게 미안하죠 호
자꾸만 더워지는 탓에.. 이번년도에 생애 처음으로
매일 틀다시피했어요. 신생아를 키우고있었거든요..
모두가 이문제를 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어요.. 탄소배출 ㅜ....

jirod**** 2018-09-04 08:54:49
저희집도 이사 후에 에어컨 설치 안하고 이번 여름 보내려고 했었는데, 결국 7월 중순에서야 에어컨 설치했어요! 7월에라도 에어컨 연결해둔게 신의 한 수 인것 같아요. 안그랬음 이번 여름 어떻게 보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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