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쉬는 시간, 한 친구가 양손으로 피아노를 칩니다.
“무슨 곡이야?”
“쇼팽의 고양이 왈츠.”
고양이를 좋아하는 수린이는 ‘고양이 왈츠’라는 곡에 반했습니다. 여섯 살 수린이는 자꾸 피아노 생각이 났습니다. 고양이에게 직접 ‘고양이 왈츠’를 연주해주고 싶었습니다.
“엄마, 피아노 배울래요.”
수린이의 요구에 저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언니 따라 태권도를 시작했다가 두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둔 일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건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건 아닌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린아, 더 생각해보자. 시간이 지나도 피아노가 계속 생각나면 그때 배우자.”
여섯 살 수린이가 그린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입니다. 피아노와 악보, 양손을 꼼꼼하게 그렸습니다. 흰색 건반 위 검은색 건반이 두 개, 세 개, 두 개, 세 개… 정확하게 반복됩니다. 오선과 높은음자리표, 음표가 빼곡한 악보를 보니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번에는 친구가 만화영화 '겨울왕국'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연주했나 봅니다. “’렛 잇 고‘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라 묻더니, 알파벳을 그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자신도 친구처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렸답니다.
여섯 살 수린이가 그린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를 보고 마음이 동한 저는 집 앞 피아노 학원에 등록부터 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중고 피아노도 들였습니다. 일곱 살 수린이는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너무 신나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습니다.
“다른 애들은 피아노를 잘 치는데, 난 왜 만날 제자리일까?”
피아노를 계속 치면 잘 칠 수 있을 거라 믿고 매일 연습했지만, 수린이 피아노 실력은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1년 6개월을 노력한 끝에, 수린이는 피아노를 그만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쇼팽의 ‘고양이 왈츠’와 '겨울왕국' 주제곡을 칠 수 없어 수린이는 너무너무 속상했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애들은 피아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지!’
수린이가 피아노를 그만둔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열 살 수린이에게 물었습니다.
“피아노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아? 피아노 정말 좋아했잖아.”
“후회 없어요!”
그때 피아노를 그만두길 잘했답니다. 여태 피아노를 배웠다면 머리가 아파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 거라고요. 피아노를 그만두었기에, 그림을 그릴 시간이 충분했고 그만큼 자신의 그림 실력이 쑥쑥 자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린이가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쇼팽의 ‘고양이 왈츠’는 못 치지만, 고양이 그림은 잘 그릴 수 있어요!”
수린이는 고양이에게 쇼팽의 ‘고양이 왈츠’를 들려주는 대신 고양이 초상화를 선물했습니다. 피아노를 칠 때보다 그림을 그릴 때, 수린이가 더 행복해 보여서 참 다행입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수린이가 참 멋집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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