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가 옳았어 “노는 게 제일 좋아”
뽀로로가 옳았어 “노는 게 제일 좋아”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10.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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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놀면서 크는 아이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라는 말을 아이 키우면서 실감한다. 여섯 살 아이는 “놀자” 혹은 “뭐 하고 놀까?”라는 말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러고는 장난감을 주섬주섬 챙겨 내 앞으로 들이민다. 이 아침 아이에게 시급한 건 간밤에 아쉽게 접어야 했던 놀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먹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밥 때가 되어도 배고프지 않다며 버티거나 노는 걸 멈출 수 없으니 밥을 먹여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신나서 놀이터에 갔다가 토라져서 돌아오는 날도 많다. 엄마는 기가 쏙 빠지도록 놀아줬는데 “이제 그만”이라고 하면 많이 못 놀았다며 서럽게 울기도 한다.

그림책 [해가 지네요 밤이 오네요]의 한 장면
그림책 「해가 지네요 밤이 오네요」(웅진다책)의 한 장면 ⓒ웅진다책/한희숙재촬영

“이제 그만”이라는 엄마의 말에 아이가 착착 장난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림책 「해가 지네요 밤이 오네요」(웅진다책)의 아기 토끼는 “장난감 치워야지”라고 엄마가 말하자 고사리손으로 장남감을 정리한다. 이제 날이 저물었으니 그만 놀고 자자는 뜻인데 아기 토끼는 기특하게도 엄마 말을 잘 따른다.

엄마는 한 손을 허리춤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지를 세워 메시지를 전한다. 몸짓뿐만 아니라 지그시 눈 감은 엄마의 얼굴에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따르니 목소리를 높일 까닭이 없다. 아이가 더 놀자고 떼쓰지 않으니 달랜다고 진을 뺄 필요도 없다. 책읽기, 자장가 들려주기, 잠옷 갈아입기 등 잠자리에 들기 전 일련의 과정들도 평화롭게 이어진다.

현실도 이와 같다면, 육아가 이토록 우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더 놀겠다는 아이를 달래 ‘육퇴’(육아 퇴근)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젯밤만 해도 잠자리에 들기 싫어 굼뜨게 행동하는 아이를 나는 목소리 높여 거듭거듭 재촉했다. 달래보고 혼내보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실컷 놀려도 보지만 부모와 아이가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아이 서너 살 무렵을 생각하면 떼쓰는 강도와 횟수가 나날이 달라져 다행이다. 더 놀고 싶다고 집에 가지 않겠다며 놀이터 바닥에 드러눕던 기억은 이제 옛날이다. 무조건 앙앙 울지도 않는다. 여섯 살 아이는 놀이 시간에 대해 의견이 갈리면 이러저러해서 더 놀아야 한다며 타당하든 아니든 자기 입장을 정리해 나를 설득하려고 든다. 또한 서로 이야기를 나눠 규칙을 정하면 아쉬워하면서도 따르는 편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적절한 해법 찾기, 자기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함께 정한 규칙 따르기 등을 놀이하며 배운다. 아쉬워도 그칠 줄 알고 다음을 기약하기, 현재에 충실하고 더욱 집중하기 같은 인생의 진리도 배운다. 어떤 일이든 맺고 끊는 것이 중요하니 아이에게 분명히 큰 배움이 될 것이다. 놀면서 크는 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느낀다.

◇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놀이 전문가다

아이를 보며 ‘놀이하는 인간’을 떠올린 건 아이의 일과 중 놀이 시간이 길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아이는 어른인 나보다 노는 방법을 확실히 잘 안다. 어떻게 놀면 재미있을지 잘 찾고 자유롭게 응용하며 논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놀이 전문가다.

재활용품 틈에서 장난감이 될 만한 것을 가려내 무언가 만들기는 우리 아이가 즐겨 하는 놀이다. 블록과 점토 같은 재료를 갖고도 엄마는 정해진 룰만 따르거나 만들기를 주저하는데 아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논다. 아이가 노는 걸 들여다보면 그 유연한 사고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 아니어도 아이가 흥미를 갖고 놀이할 것은 많다. 특히 나무막대기, 돌멩이, 모래 한 줌 같은 자연물을 아이는 좋아한다. 집 앞 공원에, 언덕에, 숲에 아이를 풀어놓고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는 즐겁게 논다
자연 속에서 아이는 즐겁게 논다 ⓒ한희숙

아이가 크면서 관심을 두는 놀이 방식도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뛰고 구르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몸놀이나 역할놀이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가 늘 하는 놀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리거나 만들어서 표현하며 노는 데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그림책을 읽고 책놀이를 제안한 것은 내 쪽이었는데 요즘은 아이가 더 적극적이다.

도서관에 다녀온 며칠 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림책 이야기를 꺼낸 건 아이였다. 아이가 준 정보를 단서 삼아 박물관 나들이 후 일기 쓰는 법을 담은 그림책 「일기 쓰고 싶은 날」(니시카타 타쿠시, 천개의바람, 2011년)을 찾아냈다. 아이는 책에서 본 대로 일기를 써보겠다며 종이를 잘라 이리저리 붙이고 꾸몄다. 그러고는 특별했던 기억을 여러 장에 나누어 그린 뒤 책 형태를 만들었다.

청중은 엄마뿐이었지만 발표회를 하듯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도 해보라고 부추기는 통에 나도 그림일기책을 완성했고 아이 앞에서 발표도 했다. 그 어떤 공부 못지않은 놀이 시간이었다.

내년이면 아이가 일곱 살이라 너무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어느 날인가 한글 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그림책 「개구쟁이 ㄱㄴㄷ」(이억배, 사계절, 2005년)를 도서관에서 빌려 아이에게 펼쳐 보였다.

아이는 예상대로 글자에는 심드렁하고 털북숭이 괴물과 아이 그림에만 온통 관심을 보였다. 털북숭이라는 매력적인 친구와 자기 같은 어린아이가 뛰고 구르고 물장난하며 재미난 놀이는 다 하니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은 접어두고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아이는 아이 성장 리듬대로 자신의 관심사를 놀이를 통해 배우며 성장 중이다. 또한 머지않아 공부를 포함해 아이가 감당해야 할 삶의 과제들이 밀려올 것이다. 놀이처럼 할 수는 있을지라도 결코 놀이는 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니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많이 놀고 행복한 기억을 쌓는 것이다. 「개구쟁이 ㄱㄴㄷ」의 한 대목처럼 진짜진짜 오늘도 재밌게 놀자.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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