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육아,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요. 정말이에요"
"쌍둥이 육아,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요. 정말이에요"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8.11.1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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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태어난지 450일 정도 된, 경빈이 경진이와의 일상이야기

쌍둥이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뭘 하고 싶어?”라고. 나는 “최대한 빨리 어린이집부터 알아보고, 안되면 애 봐줄 사람 알아보고… 나는 얼른 다시 일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갸웃하더니 “아니 그런거 말고, 뭐 그런거 있잖아. 같이 수영장을 데리고 간다든지 캠핑을 간다든지. 그런거 생각해 본 적 없어?”라고 되물었다. 나는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아이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사회인으로, 경제활동인구로, 한 사람의 여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없는 것 같아"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왜 아무도 내게 육아가 이렇게 힘든 일이란걸 말 해주지 않은거야”라고 포효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두가 육아는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든 일이라고 한마디씩 해줬던 것 같다. 도와줄 친정엄마도 없지, 몸 약한 시어머니도 멀리 사시지, 남편과는 주말부부였고, 의지할 형제도 딱히 없는 상황에 다들 나보다 더 맘이 급해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나만 천하 태평하게 “애 낳으면 뭐. 국가가 길러야지 뭐.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 쌍둥이 낳았으면 평생 할 애국 다한거지 뭐.”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나는 모성은 사회적으로 학습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후천적으로 학습된 모성에는 일부 강압적인 요소마저 존재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기르며 약간 바뀌었다. 학습된 모성, 후천적으로 훈련된 모성이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그 뭉클함은 아주 찰나의 순간에 온다.
 
이를테면 내가 목욕을 하고 팬티 한 장 입을 여유도 없이 급하게 알몸으로 나오면 욕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기들이 내 맨몸을 포옥 하고 껴안아 줄 때, 내가 한 밥을 맛있게 먹어줄 때, 엄마와 아빠와 같이 동요를 들으며 춤출 때,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뛰어갈 때, 어린이집에 자신들을 데리러 온 나를 보고 반갑다고 좋다고 소리치며 달려들 때, 많은 동화책 중 자기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보며 집중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옹알거릴 때, 아침 7시가 되면 우리 부부가 자는 침실로 ‘후다닥’ 발소리를 내며 달려와 “엄마아”, “압빠아”를 부를 때, 자고 일어나 나를 보며 씨익 웃을 때, 제 입에 물고 있던 밥알 하나를 손가락으로 꺼내 내 입에 넣어줄 때, 자고 있는 엄마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며 “아 입뻐”할 때.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순간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뭐랄까 어떤 그런 감정같은 것’을 준다.
 
뒤 돌아서면 사고치고, 치워 놓으면 또 사고치는 일이 반복되지만 이젠 그냥 웃고 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도 그냥 웃고 만다. 우리는 웃음이 많아졌다. 허허허. ⓒ전아름
뒤 돌아서면 사고치고, 치워 놓으면 또 사고치는 일이 반복되지만 이젠 그냥 웃고 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도 그냥 웃고 만다. 우리는 웃음이 많아졌다. 허허허. ⓒ전아름
얼마 전, 미세먼지도 없고, 날씨도 화창하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던 주말. 둘째 경진이는 아빠와 함께 낮잠을 자고 경빈이는 점심을 먹고 혼자 놀고 있었다. 나는 경빈이에게 신발을 신겨 집 앞으로 데리고 나갔다. 동네 한바퀴를 함께 걸으며 길가의 풀을 만지게 하고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느라 스쳐지나기 바빴던 작은 가게들의 간판을 하나씩 읽어줬다. 경빈이는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라고 물어봤다. 나는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은화미용실”, “김동률 카페”, “라오타 라멘”, “오거리마트”라고 읽어줬다. 동네 빵집에 들러 함께 먹을 빵을 사고, 빵집 옆 과일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 새빨간 사과와 다홍색 홍시와 노란 바나나, 녹색 청포도를 보며 색깔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때 경빈이가 손가락으로 홍시 하나를 툭 터트려버렸다. 주인아저씨가 기분 좋게 웃으며 터진 홍시 가져가라고 하셨다. 경빈이 덕분에 계획에 없던 홍시는 물론 바나나와 복숭아까지 사왔지만 아기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시장 구경을 했던 이 순간을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마 그런 날들이 살면서 많이 쌓일 것이다.
 
쌍둥이 유모차 끌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 내게 동네 아주머니들이 늘 한마디씩 한다.
 
“이놈들은 볼때마다 너무 예쁜데 애기 엄마가 힘들어서 어떡해”라고.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힘들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 더 많다.
진짜다. 거짓말 아니다. 정말이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서울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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