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하다는 말
이상해,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하다는 말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12.12 14:2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덜 미안해하고 더 사랑할게

출산 후 일 년,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양가에 도움을 청할 형편도 아니었고 애초부터 아이 키우는 데 부모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출산휴가 3개월 만에 조기복직하거나 그보다 일찍 타의로 자기 자리를 잃는 엄마들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복직일이 다가오자 낯모르는 사람에게 돌쟁이를 온종일 맡겨야 한다는 현실에 눈물이 솟구쳤다. 불안했지만 대안이 없는 가운데 날이 가고 달이 찼다.

막상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나가 보니 감상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컸다. 느슨해진 업무 감각을 끌어올려야 했다. 제 몫은 하는 직원이라 자부하며 일했는데 바뀌어버린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해서 팀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이 생각은 지우고 일에 몰두해야 했다.

회사에서 분주하게 일하다 저녁이면 아이를 찾으러 어린이집으로 달렸다.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므로 일찍 일어나 시간을 쪼개가며 하루를 살았고 늦게 잠들었다. 다른 선택이 차단된 삶이란 불행한 건데 삶의 행불행을 따져볼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 키우며 일하는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아이를 향한 미안함으로 견디기 힘든 날도 많았다. 가장 이른 시간에 등원해서 마지막으로 하원하는 아이가 우리 아이일 때, 그리고 그 날들이 이어질 때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뛰었을 때도, 어린이집 안 간다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돌아설 때도 아이와 같이 울었다.

남편도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아이 등하원은 물론 일과 중 아이에게 이벤트라도 생기면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건 내 쪽이었다. 그럼에도 ‘애나 잘 키우지…’ ‘애 잘 보는 게 돈 버는 건데…’ 같은 직간접적인 질타를 여기저기에서 받았다.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일하는 모진 엄마라는 프레임이 나를 향해 있었다.

유능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육아를 이유로 일을 포기할 때면 자기검열도 반복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계속 따라붙었던 것이다. 한 개인으로 봤을 때 손해가 컸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미안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림책 [엄마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단다]의 한 장면
그림책 「엄마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단다」의 한 장면 ⓒ열린어린이

그림책 「엄마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단다」(몰리 뱅, 열린어린이, 2007년)는 일하는 엄마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말할 때도 먹을 때도 뭔가를 쓸 때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도 (…) 너는 여전히 엄마 가슴속에 있단다.”

함께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아이를 생각한다는 엄마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 작가 특유의 밝고 경쾌한 색채의 그림 속에 담겨 있다.

“날씨가 험상궂을 때도 너는 나와 함께 있어.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우산이 뒤집힐 때도, 혹은 한낮의 쨍쨍한 햇볕에 사막처럼 무더울 때도…. 또 너무나 춥고 캄캄해서 펭귄과 북극곰조차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도, 맞았어! 엄마는 그때도…”

엄마에게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가늠케 하는 한 편의 시와 다름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엄마가 늘 아이를 생각한다는 건 참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사랑의 크기가 작을 리는 없다. 그러니 일하는 엄마라면 미안한 마음을 거두고 사랑을 더 표현하는 게 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인 투 식스'(9시 출근 6시 퇴근)의 시스템 속에서 빠져나왔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 돈 대신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테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직장에서의 내 자리는 아득히 사라졌다. 끝내고 보니 그게 뭐라고 팍팍하게 살았을까 싶어 참으로 얄궂다.

아쉬움이 없을 리는 없다. 공들여(?) 쌓아온 경력은 무너졌고 오랜 시간 꿈꾸던 일과는 현실적으로 영원히 이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린아이 돌보랴 일하랴 최선을 다했던 그때의 내 노력이 의미 없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림책 「그 다음엔」(로랑 모로, 로그프레스, 2015년)은 멈추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그래서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인생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긴 방학이 끝난 다음엔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이 오고, 수업이 끝나면 누군가 나를 마중 나오기도 해요.”

이렇듯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게 인생이다. 물론 “어떤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

아이가 이끌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길을 엄마는 오늘도 함께 걷는다
아이가 이끌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길을 엄마는 오늘도 함께 걷는다 ⓒ한희숙

다시금 생각을 모아본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이를 키우며 걷지 않은 길을 수없이 걷게 된다. 어느 날 아이와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다가 아이 덕분에 완전히 몰랐던 산책로를 발견했다. 아이가 손잡아 이끌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길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웠던 내 일상에 아이가 가져온 파장은 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고단할 때도 많고 후회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이는 나와 남편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선사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도 기쁘게 기다려진다. 우리 아이 일곱 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o**** 2018-12-15 18:10:49
저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항상 생각해요. 잘 놀아주고 있는건지.. 일하는 엄마는 오죽 할까요..
ㅜㅜ 아휴 반성하게 되는 글이네요. 열심히 지금을 사랑하며 아기랑 잘 놀아야겠어요!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