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도 불안합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도 불안합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12.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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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불안에 지지 않기

아이들 때문에 보게 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영재 발굴단’이다. 얼핏 영재는 그냥 태어나는 것 같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그런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알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해, 만들고자 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완벽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가 보통의 아이들을 뛰어넘었다. 어른의 수준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았다. 말 그대로 괜히 영재가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영재들의 부모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영재 부모라고 하면 마냥 좋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의외였다. 부모들은 어려움 혹은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영재들의 고민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니 부모가 해결해줄 수 없고, 그렇다고 동네 학원에 보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재 발굴단'은 부모가 해줄 수 없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영재 발굴단'은 아이들이 꼭 만나고 싶거나, 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가 멘토를 연결시켜 영재가 꿈을 잃지 않기를, 배움을 포기하지 않기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다. 그게 '영재 발굴단'의 존재 이유 같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 아이에게도 '영재 발굴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오해 마시라. 내 아이는 영재가 아니니까. 큰아이가 좋아하는 건 그림을 그리는 거다. 그림을 곧잘 그리니까 미술학원에 보내고 싶었다. 나는 그림에 대해 알려줄 수 없으니까 학원에 가면 좀 더 잘 그리는 법을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는 싫다고 했다. 미술학원은 대부분 저학년 때 많이 다니는데 아이는 4학년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미술학원에 갔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왜 그랬을까?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 나는 내 맘대로 그리고 싶은데….”

“너 그럼 그것 때문에, 이제껏 미술학원에 가지 않은 거야?”

“응.”

“그런데, 요즘 미술학원은 그렇지 않대.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도와주실 거야. 방학에 시간도 많은데 한번 다녀보면 어때?”

지난 겨울방학때 너무 심심했던 탓이었는지 아이는 그제야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포스터물감 쓰는 걸 해보고 싶었다면서 한동안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렸다. 위기는 6개월이 지나서 왔다. 그만 하고 싶다는 거다. 재밌어하는 것 같았는데, 왜 그랬을까.

“나는 나무를 하얗게 칠하고 싶었는데…."

우려했던 일이 생긴 거다. 아이는 나무를 칠하지 않고 두었다. 그걸 본 선생님은 어울릴 만한 색을 조언했다고 한다. 그걸 아이는 강요라고 받아들였다. 선생님은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선생님 마음을 이해한다. 교육비 받고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쳐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으면서 학원에 가는 게 비정상이지. 아이는 그렇게 미술학원을 그만뒀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두 달이 꼬박 걸렸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 데 두 달이 꼬박 걸렸다 ⓒ최은경
열두 살 딸아이가 결국 해내고 만 작품.
열두 살 딸아이가 결국 해내고 만 작품 ⓒ최은경

그렇다고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둔 건 아니다.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걸 찾아냈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남편이 온라인으로 캔버스를 주문했다. 내가 생각했던 캔버스와는 조금 달랐지만. 집으로 배달된 캔버스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고 번호가 쓰여 있었다. 번호가 일일이 붙은 물감과 함께. 맞다. 번호에 맞는 색대로 캔버스에 칠하면 그림이 완성되는 거였다.

아이는 별다른 사교육 학원에 가지 않는다. 학원에 가는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많다는 말이다. 빈 시간을 이용해 아이는 틈틈이 색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꼬박 앉아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한나절이고 칠했다.

한눈에 봐도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의 그림이 아니었다. 초급인데, 너무 난이도 있는 걸 고른 게 아닐까.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게 재밌을까 싶은데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즐기는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꼬박 두 달을 칠하더니 진짜 멋진 작품 하나가 나왔다. "대단하다" 아이의 끈기와 열정에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게 1일 1일러스트. 퇴근하고 돌아와 내가 주문하는 걸 아이가 그렸다. 마카롱도 그리고 오이도 그리고 방울토마토도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뚝딱 그려내는 아이의 실력에 감탄했다. "와, 멋지다" 그런데 늘 거기까지라 아쉬웠다.

엄마의 주문(?)과 동시에 생산된 아이의 그림들.
엄마의 주문(?)과 동시에 생산된 아이의 그림들 ⓒ최은경

내 아이가 영재는 아니지만, 영재 부모들이 느낀 감정을 나도 느낀 거다. 더 뭔가 해줄 수 없는 답답함과 미안함. 영어, 수학처럼 쉽게 학원을 보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원하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가르치지 않는' 학원은 이 나라 어디에도 없다.

주변 엄마들이 묻는다. 아이가 학원을 안 가는데 불안하지 않냐고. 불안하다. 아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걸 부모인 내가 잘 이끌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좋은 선생님이나 비슷한 꿈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 작은 꿈을 큰 꿈으로 키우면 좋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런 도움을 줄 수 없으니까. 내가 다른 부모들과 조금 다른 이유로 불안한 이유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친한 동생은 말한다.

“그래도 언니는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잖아. 학원 안 가겠다는 아이를 그렇게 기다려주는 것도 쉽지 않아. 진이는 매일 그림도 그린다며.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도 함께 많이 다니고 그래. 진이는 그것만 해줘도 좋아할 거야.”

정말 그럴까. 혹시 진이가 나중에라도 이런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때 내가 학원에 가기 싫어해도 억지로라도 보내지 않았냐"라고.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는 혹시나 하는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산다. 작가 정여울은 「월간 정여울 - 콜록콜록」 ‘너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보는 밤’에서 썼다.

"가끔은 빛나는 것, 화려한 것, 유별난 것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대신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수수하고 소박한 것,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 때로는 내가 원망했던 존재까지도 어느새 나 사진의 소중한 일부였음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연결고리로 서로를 붙들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며 결국은 서로를 지켜주고 있음을"이라고. 

정 작가가 말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수수하고 소박한 것,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쩌면 내 아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나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지켜주는'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나와 아이들에게도 꼭 생기길 바란다. 어쩌면 그게 내가 이 불안을 버티는 힘이 아닐까 싶어서.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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