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임신 기간, 그래도 괜찮았다
우여곡절 임신 기간, 그래도 괜찮았다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8.12.28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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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태교에 '베스트'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니 가만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나의 임신 기간은 몹시 힘들었다. 그야말로 고난의 여정이었다. 아이를 갖기 전, 나는 방송국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체력왕'으로 뽑힐 정도로 튼튼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자부했다. 그래서 아이를 품고 있는 10개월 동안 그 누구보다 무난하게 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임신 21주가 되던 어느 날, 대학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그것은 나의 철저한 오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십몇 주쯤이었을까. 첫 번째 태교여행을 끝으로 태교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고, 태교는 오로지 방구석과 병원에서가 전부였다. 하지만 참 기이하게도 그 기간 나는 몹시 행복했다.

임신 21주 초반부터 이상하게 배가 뭉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검색 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그 시기에 배뭉침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첫째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다들 그렇듯 나 역시도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면서 안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건가?' 불안했다. 경험이 없는 존재들은 늘 그렇게 불안하고 나약하다.

그러던 어느 오후 배가 너무 뭉쳐 잠깐 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그 뭉침의 강도가 말이지… 항문까지 강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간격이 무섭도록 짧았고 일정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급한 마음에 동네 병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나는 결국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분만장이 난리가 났다. 온갖 검사가 진행됐고, 팔에는 링거 바늘이 들락거렸다. 나는 이 상황이 당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조기 진통'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과 대면했다.

분주했던 병실 밖과 정적이 흘렀던 병실 안, 이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분주했던 병실 밖과 정적이 흘렀던 병실 안, 이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김경옥

의심할 만한 것은 있었지만 뚜렷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자궁의 수축은 1분 간격으로 진행됐고 수축 강도는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도 될 만큼'의 강도라고 했다. 아이의 무게는 600그램 남짓. 2주만 버텨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살려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절망적이었다.

약이 주입됐고, 나의 폐가 버거워했다. 다른 약물로 대체했고, 이번에는 온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자궁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이 약물은 자궁 이외의 다른 근육도 가차 없이 이완시켜버렸다. 고개를 가누는 것이 어려웠고, 눈을 뜨는 것도, 심지어 목구멍으로 물을 넘기는 것도 모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그때 나는 그동안 내 몸 안에서 근육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일 정도 지났을까. 수축이 잡히고 조심스레 퇴원 얘기가 나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도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사랑스럽게 배를 쓰다듬으며 차 한 잔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퇴원하고 삼 일 정도 되었을까. 나는 다시 입원 가방을 싸고 있었다. 배는 수축과 이완을 규칙적으로 반복하고 있었고,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입원과 퇴원을 네 번 정도 반복한 것 같다. 총 입원 일수는 52일. '이제는 수축이 와도 괜찮다, 낳아도 좋다'는 말을 듣고 '마지막 퇴원'을 했다.

나는 임신 기간, 많은 시간을 집과 병원에서 보냈다. 심지어 고위험군에 속해서, 입원실도 아닌 분만장에 입원하는 신세였다. 바로 옆방에서는 누군가가 아이를 낳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소리로 전달되었다.

같은 방에서 스쳐갔던 많은 룸메이트들 중 결국에는 아이와 함께 퇴원하지 못한 사람도 꽤 있었다. 고성과 눈물이 만발하는 그곳에서 정상적인 태교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안에서 괜찮았다. 심지어 행복하기까지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클래식을 듣는 것. 책을 읽는 것. 아이에게 매일매일 덕담을 해주는 것…. 태교에 '베스트'가 있을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루고루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행복했고, 그래서 괜찮았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의 태교도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신 기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일은 몹시 힘든 일이다. 몸이 힘든 건 차치하고 불안하다. 이 아이가 지금 괜찮은 건지, 내일은 또 괜찮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실제로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고위험군 동지들은 많이들 울고 힘들어했다.

그 중 제일 실실거린 산모가 나인 것 같다. 분만을 이제 막 끝낸 한 의사 선생님이 나의 입원실로 들어와, 쉬러 왔다고, 여기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왜 그렇게 웃고 농담하고 즐거웠는지 나는 지금도 의아하다. 왜 불안해하지 않고 괜찮을 거라 믿었는지 말이다. 마음이 놓여서 웃었는지 웃고 있으니 마음이 서서히 안정됐는지 그 전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건 알겠다. 엄마 마음이 괜찮은 것만으로도 지금 좋은 태교를 하고 있는 거라는 것. 무엇을 해야 한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그것을 하면 된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가? 행복한가? 그러면 그것이 '베스트'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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