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요즘 내가 좀 이상해 자꾸 화가 나"
"여보, 요즘 내가 좀 이상해 자꾸 화가 나"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5.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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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나이듦 받아들일 준비 하기

그날은 내가 두 달 만에 다시 출근하는 날이었다. 또한 그날은 아이들이 개학하는 날이었다. 그날 남편은 예정에 없던 술 약속이 생겼다며 조금 늦겠다고 했다. 두 달 만에 출근해서 하는 일은 익숙했지만 고됐다. 오전 6시 반, 새벽 출근도 힘들었지만 날도 춥고, 미세먼지도 심했다. 하필 그즈음 생리도 시작했다. 새 학기 첫날엔 아이들에게 챙겨줘야 할 것도 많았다. 가져오라는 준비물이 뭐 그렇게 많은지.

집에 돌아와 어찌어찌 애들을 서둘러 재우고 밤 10시를 넘겨, 12시, 새벽 1시…. 조금 늦겠다던 남편은 그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통화도 되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도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이 사람은 뭐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 사이 남편과 겨우겨우 통화가 됐다. 조금만 더 있다 오겠단다. 그럼 남편이 올 때까지 난 또 잠을 편하게 못 잘 거고 내일 하루는 엉망진창이 될 게 뻔했다. 나는 이미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생각 좀 하고 행동해. 하필 오늘 같은 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내가 두 달 만에 출근하는 날이고, 애들은 개학이었어. 게다가 난 지금 생리 중이라고. 지금 내 몸이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난 내일 또 새벽에 출근하잖아!”

큰 목소리에 애들이 깰까 봐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결혼하고 이 정도로 화낸 적은 없었다. ‘뭐지?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남편에게 따박따박 따지면서도 이상했다. 어색했다. 머릿속으로는 이 정도로 크게 화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계속 커지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그럼, 나는?”

순간, 내 감정을 제어하는 안전핀 하나가 '띵' 하고 풀려버린 기분이었다. 더 화가 났다. 자기 힘든 것을 지금 나한테 알아달라는 건가? 이 상황에서? 더 할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늘따라 남편이 왜 저렇게 말했을까 싶으면서도,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의아했다.

그 후로 남편과 일주일간 말을 하지 않았다. 결혼 14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세먼지로 숨 쉬기 어려웠던 건 바깥만이 아니었다. 집안 공기도 냉랭했다. 흙먼지를 씹는 것 마냥 입 안이 서걱거렸다.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여보, 요즘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베이비뉴스
"여보, 요즘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베이비뉴스

그러나 역시 시간이 약이었다. 무거웠던 집안 공기는 서서히 가벼워졌다. 일상은 다시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별 다를 것 없는 나날들. 사과와 화해, 그런 극적 반전은 없었다. 다만 그날 후로 남편이 애쓰는 게 눈에 보였고, 나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을 뿐. 내 한 몸 돌보느라 남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거다.

나중에야 남편에게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평소 내 모습과 좀 달라서 이상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이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그런 생각은 못했고, 그때 내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한 것 같아서, 후회하긴 했지.”

“그랬어? 후회하고 반성했다니 좀 낫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후회했다고 말하는 남편. 그런데도 내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며칠 전 둘째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게 자꾸 떠올라서다. 역시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내가 좀 달라진 것 같아. 아니, 좀 이상해진 것 같아. 얼마 전에도 둘째아이에게 정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냈어. 당신에게 화냈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했지. 한 번은 모르겠는데, 두 번이나 그러고 나니까 내가 좀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더라고. 최근 이런저런 이유도 몸도 아프고 그랬는데 갑자기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내가 이런 이야길 하니까, 아는 언니가 호르몬 변화일 수도 있다고 말해주더라. 이렇게 노화가 오는 건가? 혹시 내가 또 막 흥분하면 그렇게 흥분할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시간을 좀 줘.”

마흔이 지나면 몸이 전과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몸의 변화를 많이 느꼈다. 정확하던 생리 주기가 1월부터 뒤죽박죽이 됐고, 피로감도 심해졌다. 3월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근육통과 오한을 동반한 몸살이 두 번이나 왔다 갔다.

갑자기 찾아온 역류성 식도염 이후로는 밥도 양껏 먹기 힘들었다.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일정 양이 넘어가면 목이 꽉 막혀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전보다 소화력이 확실히 떨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아는 언니는 이런 내게 심하면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 해줬다. 호르몬 변화일 수 있다면서 처방받고 약 먹으면 훨씬 나아진다는 거다. 아직 젊으니까 폐경증후군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것 역시 사람마다 그 시기가 다르고 기간도 천차만별이라면서.

나이듦과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싶으면서도 짧은 기간 동안 쓰나미처럼 노화가 밀려온 것 같아 조금은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조금 천천히 와도 좋으련만 왜… 특히나 급작스러운 노화를 견디기에 내 몸이 좀 더 튼튼하지 못한 게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온갖 변화가 내 몸을 관통하던 지난 한 달 동안 나이 마흔이 넘도록 내 몸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았다. 이제부터라도 '내 몸의 변화에 민감해져야겠다, 몸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더 큰 몸의 변화가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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