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장품 갖고 싶어요" 과연 아이의 욕망일까
"엄마, 화장품 갖고 싶어요" 과연 아이의 욕망일까
  • 기고=강미정
  • 승인 2019.05.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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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를 열였다.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된 유튜브 키즈 콘텐츠의 성차별 사례를 중심으로 미디어 플랫폼의 성평등 의식에 대해 논한 자리. 토론자로 참석한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의 토론문을 지면에 옮긴다. - 편집자 말

지난 15일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에 참석한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5일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에 참석한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고통스러운 엄마다.

딸들을 웃게 할 흉내 내기나 만족스러워 할 만한 역할놀이, 격한 신체놀이 등을 해줬던 것이 손에 꼽는다. 잠들기 전 그날 아이들에게 했던 정리정돈, 청결에 대한 잔소리를 반성하며 내일은 반드시 집안이 어질러지도록 아이들과 놀이에 몰입하리라 결심해도, 이내 다음 날이 되면 그날 수행해야 할 갖가지 가사목록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함께 놀기는 후순위로 밀린다.

미래를 가능성의 장으로 인식하는 화폐 경제 체제 속 인간인 엄마, 나는 저녁밥 해야 하는데, 씻겨야 하는데, 빨래 해야 하는데 등 잠들기 전까지 근 미래를 걱정으로 가득 채우는데 반해, 미래가 잠재적으로 올 것에 불과한 아이들의 시간은 오직 현재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그 현재의 유일한 목적이자 수단은 놀이뿐이다.

놀기만을 원하는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시간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어 할 일 많은 엄마가 아이와 놀이의 무아지경에 빠지기는, 변명 같지만 요원하기만 하다. 아이들 역시 만만치 않아서 놀이의 시간과 몰입도가 채워지지 않은 날은 짜증과 울음으로 답한다. 제발 누군가 대신 놀아줬으면. 이 놀이하는 인간들로부터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런데 정말 대신 놀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유튜브 속 캐리언니. 장난감을 가지고 역할놀이를 하며 아기 흉내도 내고 엄마 흉내도 내는데, 성대모사며 쉴 새 없는 대사 하며 막힘이 없다. 이 힘든 극 연기를 연신 즐거운 얼굴로 활기차게 소화한다. 또 단순작동 기능의 장난감을 세 시간이라도 갖고 놀 것처럼 재미있게 소개한다.

부모를 대신해 놀아주는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이었다. 나는 줄곧 스마트폰 속 캐리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안일을 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유튜브 키즈시장의 폭발적 성장에는 양육자의 물리적 시간 확보라는 필요가 맞아떨어진 면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양육자가 유튜브를 통해 잠깐의 시간을 확보하는 동안 과연 아이들은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다일까. 어쩌면 일부 콘텐츠를 통해 상업주의 속 순종적 소비자로서 포획되고, 외모지상주의를 통해 자기 불만족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튜브 키즈 콘텐츠 속 놀이 소재로 등장하는 장난감은 특정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사물이 상품화된 것이 많다. 최근 사이 국내에서 제작된 유아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야기 전개가 인물, 서사 중심이라기보다 인물이 사용하는 물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완구회사가 함께 뛰어드는 공동기획의 구조 아래서 제품 판매가 목적인 기업의 생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면 마치 만화 형식을 차용한 장편광고 같다. 동시에 애니메이션 속 물건들은 마트 장난감 코너에 수많은 상품으로 출시되어있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 키즈 콘텐츠에서는 장난감 리뷰, 장난감 언박싱 등의 형식으로 자발적 혹은 대가성 장난감 홍보를 해준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각종 미디어 속 마케팅에 둘러 쌓여 장난감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소비욕망을 품게 된다. 그렇다. 아이들은 소비자일 때만 환영받고 있다.

◇ 표현의 자유와 '자본'의 자유가 혼재된 키즈 유튜브

지난 3월 14일 '핑크 노 모어' 캠페인 출범기자회견에서 분홍색과 하늘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활동가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3월 14일 '핑크 노 모어' 캠페인 출범기자회견에서 분홍색과 하늘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활동가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유튜브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받는다고 한다. 해외사업자이고 방송이 아닌 통신에 해당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키즈 콘텐츠에 대해서는 그 대상이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라는 점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키즈 콘텐츠 속에는 이윤이 되면 무엇이든 팔아도 되는 자본의 자유가 창작, 표현의 자유라는 외피를 두른 채 혼재되어 있다. 화장대 장난감 리뷰 영상 속 아이가 ‘장난감 화장대를 팝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지 2년 정도 된 아이가 장난감 화장대에 앉아 쉐도우와 볼터치를 하고 ‘화장품 갖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어디까지 아이 본연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구회사의 욕망, 포화상태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창출하기 위해 아동시장을 개척하려는 뷰티산업의 욕망은 아닐까. 아이들은 기업의 마케팅과 실시간 미디어 속에 온갖 상품에 노출되어 진정한 자유, 자신의 존엄성을 배울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 아이들 앞에는 시민으로 커가는 것이 아닌 소비대중으로, 억압의 피해자로서 길이 열려 있다.

유난히 여자아이 유튜브 영상에는 메이크업하는 영상이 많다, 올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OECD 주요국가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고, ‘주관적 행복지수’도 지난해보다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학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외모와 성별 차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차별 경험은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를 감소시키는데, 초등학생 중 20.1%가 외모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예뻐보이고 싶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화장하는 아이와 화장품을 사주는 부모를 탓해서는 안 된다. 비판의 방향은 화장하기를 부추기는 기업과 신자유주의식 경쟁이데올로기를 향해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논리를 아동뷰티산업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메이크업을 통해 외모를 인정받으려는 행위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비교를 통한 우열 정하기의 반증이다. 그리고 부단한 비교에는 부단한 낙오의 공포가 뒤따른다. 주관적 행복지수가 낮은 우리 어린이들, 유아까지 내려온 화장 문화가 우려스러운 이유다. 키즈 유튜버는 장난감 콤팩트를 뺨에 찍는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외모가 곧 정체성’이라는 기호를 찍어바르고 있다.

유튜브는 기존 미디어가 할 수 없는 개개인의 개성과 생각의 장을 펼쳐보였다. 앞으로 아이한테 너 자체가 존귀하다 말해주고 자기다운 모습을 응원해주는 콘텐츠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혐오·차별 고정관념의 미디어를 아카이빙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가이드라인 개정을 요구하고자하는 '핑크 노 모어(PINKNOMORE)'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www.pinknomore.org에 많은 제보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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