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영 소질 없는 둘째, "나 악기 배울래"
음악에 영 소질 없는 둘째, "나 악기 배울래"
  • 칼럼니스트 권정필
  • 승인 2019.06.1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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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의 동반 성장기] 아이가 원한다면, 무조건 지원해줘야 할까

지난달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악기, 특기 현악기 연주에 대한 로망이 있기에 기타 교습소에 등록했다. 이제 코드 4개를 외웠고 마음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쥐 나도록 꺾으며 연습하는데, 정말 재밌다. 집에서도 기타를 꺼내놓고 연습하니 어느새 아이들이 와 주문한다.

"엄마, 연주해봐."

난 최선을 다해 연주하며 노래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아이들 주문이 이어졌다.

"아니, 노래하지 말고, 그냥 연주만."

"멜로디는 안 되는 거야?"

"이 노래 연주해줘."

흥, 엄마는 이제 겨우 세 번 수업을 들었다고. 나의 실력을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은근 빈정상한다.

"얘들아, 엄마 이제 코드 4개 외웠다. 수업은 세 번밖에 안들었다고. 나중에 더 연습하고 연주해 줄게."

어느새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악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누나는 어떤 악기 배우고 싶어?"

큰아이는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꽤 많은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첫째이기에 들으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누나의 말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나에게 급하게 묻는다.

"엄마, 난 뭘 배울까?"

"응?"

사실 둘째가 악기를 연주하는 건 쉽게 상상하지 못하겠다. 둘째는 음악적 감각이 별로다.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보니 음치다. 게다가 손을 살펴보면 짧고 뭉툭하다. 물론 내 눈에는 오동통하고 귀엽기만 하다. 결정적으로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웠다며 연주 하는데, 음…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둘째에게 물었다. 

"악기 배우고 싶어?"

"응!"

"…."

이제 막 시작한 기타 연습.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정말 재밌다. ⓒ권정필
이제 막 시작한 기타 연습.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정말 재밌다. ⓒ권정필

이제 늦었으니 기타 연습은 못하겠다 하고 아이들을 물렸다. 그날 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을 어디까지 지원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재능이 없어 보인다고 하여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른 척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원하면 뭐든 배우게 해주어야 하는가.

물론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다른 것도 아닌 음악, 특히 악기는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무료 교육이나 국공립 센터를 알아본다면 조금은 저렴하게 배울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리 재능이 많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는 않고. 아, 모르겠다. 아이가 커갈수록 흰머리가 늘어나는 건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어렸을 적 피아노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미술을 더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때마다 단호하게 '그만'을 말씀하셨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도 무지하게 아쉬움이 남아 틈만 나면 원데이 클래스나 문화센터에서 틈틈이 배우고 있는 나는, 한때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배우고 싶다는 거 좀 가르쳐 주면 안 됐나. 만약 내가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현재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뭐 이런 생각들. 물론 지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았던 나에게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미술을 가르치기에는 버거웠다는 것을.

거의 연년생인 세 딸 대학을 모두 보내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신 건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금껏 키워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우리를 위해 살아오셨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아쉬움은 컸기에,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쉬이 넘길 수가 없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결국 '아이가 원한다면 들어줘야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둘째에게는 악기 연주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악기를 연주하니, 누나가 말하니 자신도 한마디 거들었던 듯하다. 

아마, 앞으로도 아이는 끊임없이 무언가 하고 싶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그저 지나가는 말일지도, 혹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일 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난 아이보다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 때로는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의 역할이니, 악역이 될지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칼럼니스트 권정필은 현재 사춘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아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보며, 함께 방황하며 다시 한 번 성장하고픈 평범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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