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폭력에는 '오지라퍼'여도 괜찮단다
아이야, 폭력에는 '오지라퍼'여도 괜찮단다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9.07.02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엄미야의 일 하는 엄마의 눈으로] 폭력 감수성을 키워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작은아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니, 나 역시 그 문제에 예민해진 모양이다. 아이의 질문에 "무슨 일인데?"라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며 재차 묻게 된다. 

아이가 전해준 학교 소식은 이랬다. 체육 시간에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따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아이들 노는 쪽에서 '퍽퍽' 소리가 들려 쳐다봤더니 아이들이 한 아이를 세워놓고 축구공으로 그 아이를 맞히고 있더란다.  

그 장면을 목격한 아이는 남자아이들의 행동이 학교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체육교사에게 말했는데, (아이 말에 의하면) 체육 교사가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고, 약간의 주의만 준 뒤 교실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 불거졌다. 

작은 폭력, 피해자가 동의한 폭력, 그래서 괜찮은 폭력이란건 세상에 없단다. ⓒ베이비뉴스
작은 폭력, 피해자가 동의한 폭력, 그래서 괜찮은 폭력이란건 세상에 없단다. ⓒ베이비뉴스

교실로 돌아오자 축구공으로 친구를 맞히던 남자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비롯한 여자아이들에게 "쓸데없이 참견해서 우리가 잘 못 놀았다", "서로 합의하고 그렇게 논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냐"고 계속 시비를 걸었단다. 특히 최초 제보자(?)인 우리 아이에게는 사과하라고까지 했다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건 학교폭력이 맞아. 담임선생님께 얘기하지 그랬어?"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그냥 너희끼리 얘기해보라며 뒤에서 서서 지켜보셨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없기는 아이들도, 교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당장 학교에 쫓아가고 싶었지만, 우선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아이는 선생님의 태도에서 첫 번째 좌절을 느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놀 수는 있지만 심하게 하지는 말라'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엄마, 그게 노는 거야? 친구를 때리는 게?"

아이의 두 번째 좌절은 그 친구들이 "(공으로 맞히고, 맞는 놀이를) 우리끼리 합의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한 말에서 찾아왔다. 맞은 아이의 표정은 울기 직전이었지만 적극적으로 피해를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단다. 상황이 이해가 갔다. 또래 집단에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나 그 집단에 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다른' 생각이나 표현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았을 것이 뻔했다. 

"설령 그 상황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그 말은 바뀔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왜냐면 분위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본심이 아니었을 수 있거든."

나의 설명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줄까?"

"아니, 내일 내가 학교에 가서 해결해볼게."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아이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짜 옛말이 됐다. 이런 태도는 아이를 폭력에 방치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하지만 애들 싸움에 다짜고짜 어른이 나서는게 능사는 아니다. 왜냐면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약방문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해자든 혹은 피해자든 되지 않게 하려면 '작은 폭력도 나쁘다', '작은 폭력도 폭력'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꾸준히 알려줘야 한다. 

또 '작은 폭력'을 '애들 싸움'이라고 그냥 두어선 안 된다. 교사가 개입하든, 부모가 개입하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든,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폭력을 놀이나 장난이 아닌 '폭력'이라고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주는 일이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학교폭력위원회 무용론'은 사람보다는 형식이 앞섰기 때문에,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폭력행위의 당사자가 오히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아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

우리 아이가 학교 폭력의 당사자가 될까봐, 혹은 가해자가 될까봐 두려워하기보다는, 가정에서 먼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줘야 한다. 폭력에 예민한 아이로 키우려는 노력, 학교에 쫓아가기 전에 우리 부모가 먼저 갖춰야 할 태도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은 별일 없었니?"라고 물었다. 다행히 아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잘 놀았다고 했다. 내가 학교에 쫓아갈 일은 없어진 것 같았지만, 나는 축구공으로 친구가 맞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께 이야기한 아이의 행동을 놓고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 일로 아이는 잠시 불편한 상황에 부닥쳤겠지만.

"너의 행동은 꼭 필요한 행동이었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어. 친구들은 너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거야. 축구공으로 친구를 때리던 그 아이들도 다음에 같은 행동을 쉽게 반복할 수 없을 거야.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도 기죽지 말고 이번처럼 똑같이 행동해."

그렇게 작은아이는 '예민한 오지라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참, 다행이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