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6∙25를 겪으셨다고는 하지만 일제 치하의 대한민국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이었다고 하신다. 광복 후 3세대, 우리의 부모님들은 특별히 일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신 적이 없어 나 또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역사적 배경을 수업 시간이나 TV를 통해 보았지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 이를테면 위안부나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거나 속상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렴 실제로 일제 치하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어르신들만 하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는 아직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 부모와 가정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 집단, 사회가 존재하고 지역이 있고 나라가 있고, 게다가 다른 나라와 인종, 심지어 수많은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가 우리와 생김새가 조금 다른 외국인들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아, 나라의 특색이 잘 드러난 세계명작동화 등을 접하게 해주고 있는 정도로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아이는 아직 세계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또 그 속에서의 이해관계와 갈등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라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고, 뉴스, 교과서 등을 통해 나라와 역사에 대한 의식도 자라나겠지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곳은 아마 가정, 부모를 통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 고민이 많아졌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기술력으로 인정받으며 수출 산업의 대표 제품이라고 하는, 반도체에 경제적인 규제를 가하겠다고 선언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시발점으로 온 나라의 반일 감정이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고 있다.
주변에서도 거리상 가깝고 문화적인 이질감이 별로 없어 여름휴가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던 많은 아이 부모들이 이번 여행을 과감히 취소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평소 즐겨 찾던 일본 브랜드 매장에 가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다.
그들은 작은 투쟁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라도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나 또한 아이에게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자꾸 일본에 대해 커져가는 분노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어떻게 하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잘 설명해 줄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진다.
연일 뉴스에는 예전 촛불 시위처럼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반일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간혹 아이와 함께 시위를 하고 있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에게 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일러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어떤 부모들은 이렇게 몸으로 나서 부딪히는 방식으로 직접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 사회를 이끌어 나갈 아이들에게 우리의 과거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겨레와 민족. 이런 단어에 대해 최근 생각해본 일이 있었을까? 아마 국사책에서나 보았던 이질적인 단어들일 것이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나라가 어디 있고 민족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한다면 그전에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돌이켜보자.
또한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나라, 나와 우리 아이가 속한 울타리이자 운명을 같이할 세계. 이것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슬기로운 가르침은 부모로부터 가장 먼저 시작될 것이다.
고난과 역경은 언제나 함께해 온 역사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언제나 그랬듯이 굳건하게 이겨내는 민족의 지혜를 부디 우리 아이에게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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