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영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우리 아이, 영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08.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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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아이의 성장 속도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 엄마표 영어모임에서 일어난 일

아내가 몇몇 엄마들을 모아 엄마표 영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하지만 몇 달 못가 엄마들 사이에서 이견이 생겼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하기 때문에 먼저 진도를 나가겠다'는 엄마가 생긴 것! 운전으로 따지면 자신의 멋진 차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차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아내는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여겨질까? 하는 두려움과 자격지심을 느꼈다.

자신의 아이와 다른 집 아이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부모가 있다. 나의 큰이모가 그랬다. 가족모임에서 늘 나의 성적을 묻는 큰이모. 그러면서 전교 1등 사촌 형의 성적표를 들이밀며 우월감을 한껏 만끽하던 큰이모.

우리 엄마는 기죽지 않으려고 큰이모에게 나의 성적을 두 단계 '뻥튀기'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큰이모에게 매 맞는 사촌 형을 본 적이 있다. 큰이모는 공부를 잘하는 형에게 공부를 더 잘하라고 혼냈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우월감을 얻어서 안 된다. 아이의 영재성은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고유한 개인만의 속도가 있다.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기도했던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전교 1등을 외치는 괴물이 되었던가? 나와 내 아이들이 영재가 아닌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글을 몰라도 되는 나이 7살 서율이, 잘 모르기에 더 잘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 ⓒ문선종
한글을 몰라도 되는 나이 7살 서율이, 잘 모르기에 더 잘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 ⓒ문선종

◇ 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고, 곧게 자란 나무가 먼저 잘린다

묵자는 말했다. 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고, 곧게 자란 나무가 먼저 잘린다고 말이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양파를 잘 깐다는 이유로 취사병이 될 뻔했고, 용접을 잘한다고 해서 용접병이 될 뻔했고, 페인트칠을 잘한다고 해서 페인트병이 될 뻔했다. '군대 가면 반 만'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공자가 말한 ‘중용’이란 이런 것임을 깨달았던 웃긴 경험이 있었다.

업무도 그렇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하면 그쪽으로 업무가 몰리고, 지치게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뭔가에 관심이 생겨 재미있게 하려는데 “와! 영재다!”, “소질 있다!”라고 착각한 부모는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나서고, 사교육 시장의 보기 좋은 표적이 되면서 아이는 가혹한 경쟁시장에 내몰리게 된다.     

최근 나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로 구성된 가족과 교제 중이다. 이 가족에게는 우리 둘째 지온이와 같은 나이의 자녀가 있다. 미국인 아빠는 우리 지온이가 말도 잘하고, 기저귀도 차지 않는다며 부러워했다.

나는 그에게 "그 댁의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이중언어를 구사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가 느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오히려 그런 환경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속도가 있다"고 말하며 오히려 지금 느린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해줬다.

내 아이가 지금 다른 아이들보다 뭔갈 잘한다면 부모는 우쭐하며 오만해진다. 그 버릇을 못 고치면 아이에게 '왜 더 빨리, 잘하지 못 하냐'고 다그칠 수밖에 없다. 또,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 번씩 퇴행한다. 이 또한 성장 과정이기에 절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영재들 중에 장기 레이스를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초반에 전력 질주하다 힘을 다 뺀 사례들을 많이 봤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우월감을 느끼고, 자랑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그런 부모들이 있다면 교육공동체에서 멀리해야 할 대상 1호이자,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하지 않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화여대에서 찍은 사진, 여기를 보내고 싶은 욕심을 구겨 넣어본다. ⓒ문선종
이화여대에서 찍은 사진, 여기를 보내고 싶은 욕심을 구겨 넣어본다. ⓒ문선종

◇ 아이의 등 뒤에 서서 나 자신을 경계하자

조바심이 느껴진다면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가장 경계해야 할 무서운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바로 우리 부모들 자신이다.  

EBS에서 한국 엄마와 미국 엄마 각각 11명을 대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한 적 있었다. 연구에서는 자녀와 카드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손실과 이익을 비롯해 상대방의 손실과 이익을 동시에 알기됐을 때 각 그룹 간의 뇌 변화를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예상치 못한 이익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 뇌에서는 '보상 뇌'라고 알려져 있는 측핵(Nucleus Accumbens)이 활성화된다. 놀랍게도 한국인 엄마들은 오로지 상대방과 비교해서 이익일 때만 보상 뇌가 강한 반응을 보였지만 미국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절대적 이익에만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 사이언스 기사에서도 '한국인은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이 미국인보다 3.5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다.      

지금 당장 아이에 대한 교육철학을 글로 써서 학교와 친구의 학부모들에게 공유하자. 화살이 아이에게 가는 모임이나 활동이라면 당당하게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약점보다는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 진짜 영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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