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산고래의 비밀 1-1
[전학생은 명탐정] 산고래의 비밀 1-1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9.27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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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10장

우리 셋은 입을 크게 벌린 것처럼 뻥 뚫려 있는 계단 입구로 다가갔다. 허공으로 들려 있는 계단의 양쪽 끝부분에 쇠로 된 두꺼운 팔 같은 게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자상을 조작하면 저 두 팔 모양의 쇠막대가 위로 쭉 펴져서 계단을 들어 올리고, 계단을 닫을 때는 마치 팔이 접히는 것처럼 안쪽으로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두침침한 터널 형태의 비밀 통로에 들어섰다. 각자 미리 준비한 손전등을 켜자, 불빛 세 개가 동그랗게 떠올라 충분히 앞을 볼 수 있었다.

“다겸아, 이게 뭘까?”

영지가 가리킨 쪽을 보니 통로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콘크리트 바닥에 기다란 쇠막대가 하나 누워 있었다. 다겸이 잠시 생각하고 답했다.

“비밀 통로 안쪽에서 문을 닫는 레버가 아닐까? 혹시라도 계단이 열려 있는 모습을 밖에서 누가 보면 안 되니까 한 번 닫아보자.”

다겸이 쇠막대를 붙잡고 반대쪽으로 당겼지만 힘이 약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내가 다겸을 물러나게 하고 힘껏 당기니 천천히 쇠막대가 움직였다. 마침내 쇠막대가 반대쪽으로 눕자, 방금 전과 같이 사자상이 움직이는 쿠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이 안쪽으로 내려왔다.

“다겸이 말이 맞았네.”

계단이 완전히 내려와서 다시 처음처럼 비밀 통로가 꽉 닫힌 걸 확인한 영지가 다겸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겸은 신경 쓰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여기가 끝이야.”

10미터쯤 안으로 들어간 곳에서 발길을 멎은 다겸이 말했다. 할머니가 편지에서 말한 무거운 자물쇠가 달린 철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때 내 눈에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보여 펄쩍 뛰며 놀랐다.

“여기 쥐가 있어!”

다겸과 영지가 나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두 사람의 눈빛에 기가 질려 다시 살펴보니 쥐로 위장시킨 소중한 나의 무선조종카였다. 부엉이 아저씨를 속인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나까지 속는단 말인가.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무선조종카를 가방에 챙겨 넣고 다겸에게 다가갔다. 이제 마지막 관문, ‘산고래’의 비밀을 푸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다겸아, 이 자물쇠를 열 계획은 있어?”

“당연하지. 설마 탐정이 아무 계획도 없이 왔겠어?”

다겸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자물쇠를 가리켰다. 웬만한 어른의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커 보이는 자물쇠의 몸통 왼편에는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세 개의 옆으로 돌려서 맞추는 숫자판이 붙어 있었다. 숫자판에는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한편 몸통 오른편에는 하나짜리 또 다른 숫자판이 있었는데, 그 숫자판에는 ‘3’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자물쇠의 힌트는 '산고래' 뿐. ⓒ베이비뉴스
자물쇠의 힌트는 '산고래' 뿐. ⓒ베이비뉴스

“부엉이 아저씨는 세 자리 숫자 비밀번호를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어. 아마 산고래라는 말이 그 비밀번호를 푸는 힌트겠지.”

“그냥 자물쇠 앞에서 크게 산고래, 하고 외치면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제안하자 영지가 얄밉게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바보! 무슨 ‘열려라 참깨’도 아니고 그게 되겠니?”

나는 약이 올라 자물쇠에 대고 크게 ‘산고래’ 하고 외쳤지만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겸이 웃으며 정리에 나섰다.

“솔직히 나도 ‘산고래’의 뜻은 잘 몰라. 하지만 세 자리 비밀번호를 푸는 방법은 간단해. 100의 자리에 올 수 있는 숫자는 0부터 9까지 열 개잖아. 10의 자리랑 1의 자리도 마찬가지고. 그럼 세 자리에 각각 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곱하면 천 가지 방법이 나오지(10×10×10=1000).”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음, 좋아. 간단히 말해서 000부터 001, 002, 003……. 997, 998, 999까지 천 가지 조합을 다 해보면 언젠간 자물쇠가 열린다는 말이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차피 오늘 밤에 이것 말고 달리 할 일도 없잖아.”

이제야 좀 이해가 갔다. 한마디로 가능한 숫자를 전부 넣어보자는 거다. 내가 물었다.

“뭐부터 할 건데?”

“헷갈리니까 순서대로 해야지.”

다겸은 휘파람을 불며 자물쇠의 숫자판을 이리저리 돌려 ‘000’을 맞추었다. 그러나 자물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 몸통 오른편의 하나짜리 숫자판의 수가 ‘3’에서 ‘2’로 바뀌었다.

“어, 이게 왜 3에서 2가 됐지?”

내 질문에도 다겸은 침묵만을 지켰다. 다겸은 돌로 만든 사자상처럼 딱 굳어버려 영지와 내가 양쪽에서 팔을 잡고 흔들어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망했다…… 이 하나짜리 오른편 숫자판은 비밀번호를 넣어볼 수 있는, 남은 횟수를 표시하는 거였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두 번밖에 없다는 거지.”

다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했어. 그러고 보니 부엉이 아저씨는 3월부터 7월까지 시간이 엄청 많았지. 천 개의 숫자 조합을 일일이 해볼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못 푼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야. 아무 거나 숫자를 넣었다가 기회가 다 없어지면 영영 문을 못 여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었어.”

“그럼 이제 다른 방법이 없어?”

“산고래의 뜻을 푸는 방법 말고는 없어.”

흙빛으로 변한 얼굴로 물어본 내 말에 다겸도 똑같은 얼굴로 답했다. 그때부터 우리 셋은 산고래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고래는 바다에 사는데 왜 산고래라고 했을까? 설마 산에 사는 고래가 있나? 산낙지처럼 말이야.”

“산낙지도 바다에 살아. 산낙지는 살아 있는 낙지라는 뜻이야.”

나와 다겸의 문답.

“산고래는 모르겠고 돌고래는 아는데. 수족관에서 봤는데 돌고래 되게 귀엽게 생겼더라.”

“돌고래는 비밀번호랑 아무 상관이 없어.”

영지와 다겸의 대화.

“저번에 가족들이랑 부산에 놀러갔다가 고래 고기를 파는 데를 봤어.”

“고래 고기를 먹는다고? 진짜?”

“아이, 참! 시끄럽다니까! 제발 조용히 생각 좀 하자!”

영지와 나의 수다……에 끼어들어 화를 내는 다겸.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만 가는데 여전히 비밀번호는 캄캄한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영지의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벌써 다음 날 새벽 3시였다.

“부모님께 몰래 나간 걸 들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면 늦어도 6시까지는 여기서 나가야 돼.”

영지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때까지 침대로 못 가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단 세 시간에 불과했다. 다겸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여전히 생각에 집중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어.”

오랜 생각을 마친 다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지루한 시간에 지쳐 있던 나와 영지는 얼른 그게 뭐냐고 물었다.

“혹시 각 글자의 획수를 말하는 게 아닐까?”

“획수?”

“응. 어떤 글자를 쓸 때 몇 번 연필을 움직이느냐를 뜻해. 예를 들어 ‘산’은 ‘ㅅ’이 두 번, ‘ㅏ’가 두 번, ‘ㄴ’이 한 번으로 총 다섯 번 연필을 댔다가 뗀 거지. 이런 식으로 ‘고’는 다 합쳐서 세 번. ‘래’는 다 합쳐서 여섯 번. 그러니까…….”

“산고래는 536이구나!”

눈치 빠른 영지가 먼저 정리했고, 다겸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보자!”

이번에는 내가 자물쇠 번호를 맞추었다. 위에서부터 5, 3, 6을 순서대로 잘 맞추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고, 오른편 숫자판의 숫자만 ‘2’에서 ‘1’로 떨어졌다.

모처럼 그럴싸한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이번에도 꽝이었다. 다겸을 비롯한 우리들은 몹시 실망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기회 한 번만 남았어. 그러니 어느 때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어.”

굳이 다겸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마지막 기회에도 실패해서 보물을 못 찾으면 타이탄X를 살 수 없다는 게 벌써부터 실망스러웠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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