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여행 프로그램 전성시대입니다. 방송사마다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고 유명 연예인이 다녀온 여행지는 상품으로 엮여 불티나게 팔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예인이 예능에서 하는 역할은 사실 저 같은 여행 리포터들이 교양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해오던 일인데요. 차이점이 있다면 예능은 연예인 출연자가 중심이지만, 교양은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여행 리포터들은 좋은 인터뷰를 얻기 위해 수십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그렇게 19년을 여행 리포터로 일하다 보니 저만의 빅 데이터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취향이나 감동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으로 보이는 패턴이 있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가족 여행의 경우 아이의 나이에 따라 여행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이었어요.
◇ 아이가 어릴 땐 콧바람만 쐬어도 감격, 걷기 시작하면 영혼까지 '탈탈'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콧바람을 쐬기만 해도 감격스러워합니다. 워낙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낀다는 분이 많은데요. 이런 분들은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산책하는 코스에서 자주 만나게 됩니다. 보는 사람이 힘겨울 정도로 짐은 한가득이지만 목소리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가벼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집에서 종일 아이만 쳐다보고 있으면 답답하거든요. 이렇게 나오니까 기분 전환도 되고 활기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다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 여행의 텐션이 쭉쭉 올라갑니다. 이때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좋아요’, ‘재밌어요’, ‘맛있어요’가 인터뷰의 전부인데요. 그 모습이 어찌나 해맑고 예쁜지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게 되고 방송에도 반드시 한 두 컷 나가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겠다는 듯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그런 아이를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보면 부모들은 어느새 체력은 물론 영혼까지 탈탈 털리곤 합니다. 그럼에도 아이의 미소 한 번이면 자양강장제를 먹은 듯 함박웃음을 짓곤 하지요.
"집에서는 뛰지 마라. 어지럽히지 마라.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해요. 저도 집안일을 덜 하게 되니 좀 더 착한 엄마가 되는 것 같고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들은 좀 더 교육적인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때 여행의 방향성은 부모의 육아 철학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새해 다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라면 매년 해돋이 명소를 찾고, 자연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라면 시골을, 역사 공부가 목적이면 박물관 탐방을 여행 코스에 넣게 되는 거지요. 또한, 이 나이 때는 무조건 좋고 재밌다고만 하던 아이들의 인터뷰도 조금씩 길어지게 됩니다.
“떡방아를 쳐봤는데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방아깨비를 잡았는데 생긴 것도 촉감도 이상했어요.”
특히, 종합적인 느낌과 감정에 따라 여행 점수가 달라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기억해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명한 여행지라서가 아니라 그곳에 재미있는 요소가 있냐, 없냐에 따라 아이들은 최고의, 또는 최악의 여행으로 나누는 것 같아요.
◇ 아이가 함께 여행 '다녀줄' 시간은 10년 남짓, 지금 실컷 다니세요
귀가 따갑도록 엄마 아빠를 찾으며 조잘대던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면 점점 표정이 굳고 말수가 줄어듭니다. 특히 중학생 이상이 되면 부모와 여행하는 경우가 무척 드문데요. 인터뷰를 해도 세상 재미없는 표정으로 ‘잘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왔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이 시기 아이들이 여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카메라만 들이대도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거든요. 서운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부모보다 친구와의 여행이 더 즐거운 나이가 된 것이지요.
성인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 왔다는 의무감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해도 부모들은 가족이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데요. 얼마 전에 함께 여행 중인 3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에 제가 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그 소식에 각지에 떨어져 살던 자식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부탁했지요. 제 컨디션이 더 나빠지기 전에 추억을 쌓고 싶다고. 그래서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하게 됐는데 자식들에 귀여운 손주들까지 함께하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가족들은 여행의 방법만큼이나 인터뷰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감정은 모두 같은 듯했어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인터뷰보다 진심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취재하는 동안 저나 스태프들도 '나중에 가족들과 꼭 다시 와야지'라는 다짐을 매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아이와 함께 여행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커서 자유롭게 여행 다니나 싶지만, 정작 그 시간은 길어야 10년 남짓이더라고요.
혹시 아이와 편하게 여행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아이와 떠나기에 가장 좋은 시기란 없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 버린다고요. 그리고 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그 어떤 것보다 가족의 인생에 소중한 선물이 될 거라고요.
*칼럼리스트 송이진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19년차 방송인이자 50여 편의 광고를 찍은 주부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매년 4~5회의 해외여행, 다수의 국내여행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아이와 해외여행 백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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