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에게 '존댓말'이 웬 말인가
성폭력 가해자에게 '존댓말'이 웬 말인가
  • 칼럼니스트 김나희
  • 승인 2019.12.16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량정보 거기 서!] "안 돼요!"가 아니다, "안 돼!"라고 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No! Stop! Don't"를 외치라고 가르친다.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다. 문제는 한국어로 이 표현들이 번역될 때 ‘존댓말 패치’가 자동으로 붙는다는 점이다. 가해자에게 안 된다고, 싫다고, 멈추라고 외칠 때도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 존댓말로 외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다가 어렵게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하고 가해 교수에게 맞선 일이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오랫동안 체화된 예의와 순종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사건을 묘사할 때도 "교수님께서 제가 거부하는데도 자꾸 만지시고 부당한 요구를 하셨습니다"라고 극존칭을 썼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담당하던 성폭력 상담 단체의 관계자는 답답하고 안타까워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단다.

'교수님께서가 뭐니, 그 '개자식'이라고 해야지….'

권력관계는 피억압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저항하기 어렵게 만들며, 피억압자의 몸에 무력함을 새긴다. 많은 경우 우리가 쓰는 언어가 피해자를 더 움츠러들게 하고 더 두려워하게 만든다. 또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보면, 아주 약간의 권력 차이만으로도 엄청나게 피해자가 위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와 위계가 작용하는 성폭력에서는 피해자가 맞서는 힘을 끌어내기가 더 어렵다. 어릴 때부터 큰 소리로 저항하는 연습을 하여 거부할 권리를 머리에 새겨야 하고, 주먹에 새겨야 하고, 복근에 새겨야 하고, 성대에 새겨야 한다. 몸에서 저절로 방어 반응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 어린이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존댓말 패치'부터 떼자

당장 '존댓말 패치'를 떼고, 어린이들에게 "안 돼! 싫어! 하지 마!"를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릴 수 있게 가르치자. ⓒ베이비뉴스
당장 '존댓말 패치'를 떼고, 어린이들에게 "안 돼! 싫어! 하지 마!"를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릴 수 있게 가르치자. ⓒ베이비뉴스

존댓말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외치면 공손과 순응이라는 상반된 태도 속에 저항과 거부라는 메시지를 담게 되어 그 효과가 약화한다. 상대가 어른이든, 친족이든, 교사든, 모르는 사람이든 "안 돼! 싫어! 하지 마!"라고 가해자를 가장 잘 제압할 수 있는 명령을 입에 붙도록 연습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가해자에게 존댓말이 웬 말인가?

해리 포터가 자신의 부모와 친구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 하는 볼드모트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존댓말을 한다고 상상해 보자. 목숨을 건 최후의 대결에서 해리 포터가 볼드모트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모습을.

"이제는 당신과 저 둘뿐이에요. 우리 중 한 사람은 영영 사라져야 해요. 당신의 마법들이 소용없다는 걸 모르겠나요?"

그렇다. 이상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괴상하다.

물론,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가해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빠져나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피해 아동이 자신의 대응을 자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과 자기 보호의 방법은 다양하고 단계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크게 소리치며 거부하는 저항의 첫 번째 단계를 몸에 배도록 하고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돕는 것이 'NO' 교육의 목표라면, 공손함이 탑재된 말투는 버리는 것이 맞다. 어린이들에게 단전에서 올라오는 우렁찬 목소리로 "안 돼! 싫어! 하지 마! 저리 가!"를 외치도록 가르치자.

*칼럼니스트 김나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42개월까지 모유수유했으며,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8길 111 우명빌딩 2~4층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일 : 2010-08-20
  • 일반주간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10138
  • 등록일 : 2011-01-11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 (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Copyright © 2020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